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독일과 덴마크·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이 서둘러 국방비 증액에 나서고 있다. 러시아의 공격과 국제 정세 악화를 명분으로 각국이 국방을 강화하는 가운데 이번 전쟁으로 전 세계 군비 경쟁의 족쇄가 풀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6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오는 2033년까지 자국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 수준인 180억 덴마크크라운(약 3조 2270억 원)까지 끌어올리겠다고 이날 밝혔다. 지금까지 군비 지출을 늘리는 데 소극적이었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 2020년 현재 덴마크 국방비는 GDP의 1.4%대였다. 프레데릭센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잔혹한 공격은 유럽에 새로운 현실을 예고했다”며 “역사적인 시대는 역사적인 결정을 요구한다”고 이 같은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호주는 총 100억 호주달러(약 9조 1000억 원)를 들여 신규 핵잠수함 기지를 건설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7일 외교 정책 연설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아시아태평양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경고하며 이 같은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고 전했다.
이에 앞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7일 연방의회에서 현 GDP 대비 1.4% 수준인 국방비를 당장 올해부터 2%로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또 1000억 유로(약 133조 5000억 원) 규모의 국방기금을 조성해 미국산 F-35 스텔스 전투기 등 최첨단 무기를 사들이겠다고도 했다. 2일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TV연설에서 국방비 증액 등 국방 분야 투자를 약속한 바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인 덴마크와 독일은 지금까지 나토와 미국의 군사력에 기대 자주국방 강화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GDP 대비 2%(2020년 기준) 수준의 국방비를 확보해온 프랑스와 달리 독일과 덴마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더 이상 미국이 세계 국방을 책임질 수 없다’며 국방비를 GDP 대비 2%로 늘리라고 거세게 압박했을 때도 증액을 차일피일 미뤄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현실화로 유럽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하면서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평가했다. 특히 현재 옛 소련권 국가인 조지아와 몰도바가 우크라이나에 이어 러시아의 다음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상황에서 전쟁이 상시화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유럽 내에 번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유럽 국가들의 자주국방 강화가 글로벌 군비 경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세계대전 전범국’인 독일이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지난 70년 동안 유지해온 대외 정책의 주안점을 외교에서 안보로 바꾼 것을 시작으로 러시아 방어를 이유로 각국이 군비 확충에 나설 경우 이 같은 추세가 유럽 각국으로 확산될 수 있다. 독일에서는 평화를 기조로 삼아온 녹색당 출신의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교장관이 “독일 외교정책이 180도 전환됐다”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중국도 5일 올해 국방비를 지난해 대비 7.1% 늘어난 1조 4504억 5000만 위안(약 279조 원)으로 책정하며 국방비 증액 대열에 합류해 이 같은 우려를 고조시켰다. 이는 유럽 국가와 달리 미중 갈등에 대비하는 차원이라는 분석이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의 대만 무력 통일 시나리오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에 또 하나의 잠재적 위협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