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 칼럼] 푸틴을 멈춰 세울 결정적 제재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단순한 경제 압박만으로는 한계

미국산 원유 생산·수출 확대하고

베네수엘라·이란 제재 봉인 풀어

'푸틴의 믿는 구석' 직접 노려야






교전이 시작됐다. 그리고 이제 승자를 가리는 일만 남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서방뿐 아니라 전 세계인들의 결속을 끌어냈고 주요 경제국인 러시아에 역대급 제재를 선언했다. 이로 인해 러시아 주식시장이 뿌리째 흔들렸고 루블화는 거의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역사는 단순한 경제 제재만으로 대상국의 정권 교체는커녕 정책 노선 변경조차 끌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분리 정책과 이란의 핵 개발 계획에 경제 제재가 부분적인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나마 이 정도의 효과를 끌어내려면 단호하고도 포괄적인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중국·인도와 페르시아만 연안국을 포함한 일부 주요국들이 러시아 보이콧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제재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속셈을 뒤흔들어 놓을 길이 하나 있기는 하다. 러시아의 오일과 가스 산업에 제재를 가하면 된다. 오일과 가스는 푸틴에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이들은 러시아 국부의 원천이자 푸틴이 ‘믿는 구석’이다. 오일과 가스는 이제까지 나온 제재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미국이 내놓은 금융 제재는 러시아가 계속 에너지 수출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뒀다.



러시아산 연료에 제재를 가하면 지난 1970년대의 에너지 위기가 재발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내국인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유추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현재 미국은 오일과 가스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다. 게다가 지금 당장이라도 미국 내 생산량을 늘리거나 다른 국가들의 생산 시설 가동을 도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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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은 미국산 원유의 신속한 생산과 수출을 확대해 러시아 에너지를 대체함으로써 국제 질서를 겨냥한 중대한 도전에 결연한 대응 의지를 밝혀야 한다. 미국 내 천연가스 생산을 확대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고 액화천연가스(LNG)를 유럽에 원활히 공급하기 위해 금융 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한국과 일본처럼 대체에너지원을 보유한 국가들이 더 많은 LNG를 유럽으로 돌리도록 장려해야 한다. 이들 모두 시간을 필요로 하는 조치들이지만 시장은 대통령이 보낸 신호와 늘어날 공급량에 반응할 것이고 결국 에너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충분치 않다. 바이든은 두 개의 거대한 에너지 공급원에 찍힌 봉인을 해제해 이들이 충분한 양의 연료를 신속히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베네수엘라와 이란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취한 제재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능하다면 이란과의 협상을 통해 한껏 좁혀진 견해차를 해소하고 이란 핵 협약에 재가입함으로써 이란산 오일의 시장 복귀를 허용해야 한다.

또한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아랍에미리트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에게 직접 손을 내밀어 냉랭해진 관계를 개선하고 이들의 원유 증산을 유도해야 한다. 이들은 단기간에 원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걸프협력회의 회원국이다.

우파와 좌파 모두 필자의 이 같은 제안에 격렬히 반대할 것이다. 예상되는 반대론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이렇다. 미국 내외의 증산을 통해 새로 공급될 가스의 대부분은 금지된 러시아 에너지를 대체하는 데 사용될 것이다. 환경보호 이점도 있다. 미국산 천연가스는 러시아산에 비해 메탄가스 유출량이 적다. 따라서 미국산 대체 가스가 순 탄소 배출량을 높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원유 생산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 역시 러시아에 비해 낮다. 천연가스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은 독일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가장 더러운 연료로 꼽히는 석탄 사용이 줄어드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현 상황에서 탄소 배출량을 단기적으로 줄이는 최상의 방법은 석탄을 천연가스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런 조치들은 한결같이 상징적이거나 실질적인 문제점을 지닌다. 그러나 다스리는 것은 선택을 하는 것이고, 위기 상황에서의 통치는 어렵고 고통스러운 선택을 뜻한다. 이를 가장 잘 이해하는 나라가 독일이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맞서 노드스트림2 가스관을 정지시켰고 두 개의 LNG 터미널 신설 계획을 밝혔으며 석탄 사용량을 늘릴 수밖에 없고 폐기 예정이던 원전들의 수명 연장이 불가피할지 모른다고 시인했다. 이 같은 정책을 발표한 독일 연정 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지닌 정당이 환경보호를 외치는 그린 파티다.

바이든 행정부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수반되는 위험 부담이 더할 나위 없이 크다고 강조했다. 맞는 얘기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성공한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세계에서 살게 된다. 따라서 그가 성공하도록 놓아둬서는 안 된다.

아돌프 히틀러가 소련을 공격했을 때 철두철미한 반공주의자였던 윈스턴 처칠은 “만일 히틀러가 지옥을 공격한다면 나는 악마를 두둔하는 칭찬거리를 찾아낼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모든 비(非)러시아산 에너지에 지원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이 같은 정책 변화는 푸틴의 아킬레스건을 후려치는 치명적 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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