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10분간 '조율' 7번 언급…"상황따라 매도 비둘기도 될 수 있다"

■'韓銀 독립성'보다 정책조화 강조한 이창용

이분법적 통화정책 틀에서 벗어나

재정당국과 유기적소통 중요성 역설

"한미금리 역전돼도 자본유출 미미

금리로 가계부채 연착륙 시킬 것"





“정부와 대화하지 않는 게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아닙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주시하고 서로 조율하면서 정책의 일관성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1일 인사청문회 준비 태스크포스(TF) 사무실에 첫 출근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 중 하나는 ‘조율’이었다. 그는 10분 넘게 이어진 언론 인터뷰 동안 총 일곱 차례에 걸쳐 정책 조율을 강조했다. 또 ‘정책 일관성’ ‘협조’ ‘대화’ 등의 단어도 반복해서 등장했다. 취임 일성으로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첫손에 꼽던 과거 한은 총재들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 후보자는 과거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 인수위원회에서 일하던 때부터 줄곧 재정과 통화정책의 적절한 배합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피력해왔다. 이날 발언도 그런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미국의 공격적인 긴축정책, 고물가를 자극하는 우크라이나 사태, 오미크론 변이 확산에 따른 중국 상하이 봉쇄 등으로 우리 경제는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상황이다. 물가와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그 어느 때보다 재정과 통화 당국 간 유기적 소통과 협조가 중요하다는 게 그의 판단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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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자는 중앙은행의 역할이 변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중앙은행이 물가 안정의 목표를 지키는 데 너무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지금은 큰 틀에서 물가, 성장, 금융 안정 등을 종합적으로 보고 정부와 협조하면서 어떻게 물가 목표를 달성할지 고민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통화정책은 각종 경제지표와 여건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만큼 상황에 따라 어떤 경우는 ‘매파(통화 긴축 선호)’, 또 어떤 경우는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파와 비둘기파의 이분법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고 경제 상황에 맞춰 융통성 있게 통화정책을 운용해나가겠다는 의미다.

추가경정예산 등 재정정책에 대해서도 정부와의 조율을 강조했다. 이 후보자는 “재정정책이나 대출 규제 방안이 국가부채나 유동성에 큰 영향을 줄 경우 한은이 나서야겠지만 지금은 미시적 측면의 정책 목표가 크기 때문에 정부와 연계해 서로 조율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를 책임지는 중앙은행과 성장을 우선하는 정부 간의 적절한 긴장 관계는 필요하다”며 “이주열 총재가 퇴임사를 통해 강조했듯 통화정책은 내 패를 감추는 ‘포커 게임’이 아니라 패를 보여주고 상대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 ‘협조 게임’이 돼야 한다”고도 했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우호적이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내외 변수가 난마처럼 얽혀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정정책의 수단을 지닌 정부와 통화정책의 도구를 가진 중앙은행 간에 협업과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금융통화위원 출신의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은은 정부와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상호 견제를 해야 하는 관계”라며 “자칫 한은이 정부에 보조를 맞추겠다고 보여질 수 있는 점은 문제”라고 짚었다.

이 후보자는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이라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서는 “경기 하방 리스크가 실현됐을 때 물가와 성장 중 어느 쪽에 더 영향을 줄지는 분석해봐야 한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금통위원들과 함께 분석해 방향을 정하겠다”고 말했다.

미국이 통화정책 정상화의 가속페달을 밟을 경우 우리와 기준금리가 역전돼 자금 유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두고는 “자본 유출은 금리 외에도 환율 변화에 대한 기대 심리와 경제 전체의 기초 체력 등 여러 변수에 달려 있다”며 “우리의 경제 여건상 한미 간 금리가 역전되더라도 자본 유출에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진단했다. 그는 “오히려 금리 격차가 커지면 원화 가치가 절하될 텐데 그것이 물가에 주는 영향을 조금 더 우려하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2000조 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역시 이 후보자가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는 문제다. 그는 “가계부채는 중장기적으로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어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며 “총재가 되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 등 금융 당국과 함께 종합적인 대책을 고민해보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빠른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잡을 수 있게끔 한은이 분명 신호를 줄 필요가 있다”며 “금리를 통해 가계부채가 연착륙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김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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