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미국은 다국적 연합군을 결성해 반격에 나섰다. 이라크는 사막 전투에서 당시 최고 성능을 자랑하던 T-72 전차가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불과 100시간이 지난 뒤 그 믿음은 깨졌다. T-72는 미군의 주력 전차인 M1 에이브럼스와 대치할 때마다 격파당했다. 사막에 수없이 널린 T-72 잔해들은 이 탱크의 허울뿐인 명성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T-72는 구소련이 1971년 개발하고 1973년 양산과 배치에 나선 전차다. 소련은 직전 T-64를 개발했지만 겨우 250여 대를 생산한 뒤 폐기했다. 엔진과 자동장전장치 등에서 결함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T-72는 T-64가 세계 최초로 채용한 복합장갑(장갑 사이에 다른 물질을 첨가해 장갑의 방어력을 획기적으로 올린 것)은 물론 반응장갑(포탄 공격을 받을 경우 장갑 사이에 들어 있는 폭발성 물질을 폭발시켜 바깥 장갑을 튕겨내 관통력을 약화시키는 것)까지 장착한 최신형 전차였다. 서방국들은 실전에 배치된 T-72를 주요 위협으로 간주하고 대응 방안 찾기에 고심했지만 걸프전 이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기감을 느낀 소련은 이후 개발을 서둘러 1992년부터 T-90을 배치했지만 주력은 여전히 T-72다.
북한군이 6·25전쟁 때 몰고 다닌 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의 전차군단과 대적하던 소련제 T-34다. 북한 인민군은 당시 240여 대의 T-34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우리 군에는 한 대의 전차도 없었다. 북한은 그 뒤 소련으로부터 새 전차를 공급받지 못한 채 외국에서 들여온 T-62를 개량해 주력 전차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 군은 2400대, 북한 군은 4300대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이 보유한 T-72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기로 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군이 소련제 탱크 사용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를 지키려면 국가는 압도적 군사력을 갖추고, 국민들은 싸울 의지를 지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