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공감] 10만 통의 부재중 전화







1년 치 카드 값 누가 두 번만 내주세요. 힘들어 죽을 거 같아.(4313번째 통화)/ 저는 우는 어른이 되려고 해요. 어른이 되면서 점점 우리는 울음을 참아야 하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세상에 맞춰가지 않고 계속해서 우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53,992번째 통화)/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네 애가 내 배 속에서 아무한테도 알려지지 않고 죽임당한 것처럼.(22,275번째 통화)/ 일하러 가는 중인데 사실은 그냥 내 애가 보고 싶다.(94,107번째 통화)/ 아버지 제가 주식으로 8억을 말아먹었습니다.(52,243번째 통화)/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에는 죽었으면 좋겠어요, 태어나자마자. 저는 사는 건 적성에 안 맞는 거 같아요.(34,276번째 통화)/ 퇴사해도 나는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딸이죠?(75,114번째 통화)/ 침묵 후 통화 종료(다수의 부재중 통화) (설은아 엮음,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 2022년 수오서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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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가면 어릴 적 마루에 놓여 있던 다이얼 전화기들이 일제히 울린다. 전화기를 들면 누군가 못다 한 말, 임자에게 끝내 가닿지 못한 부재중 메시지들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전시장 한쪽의 공중전화 부스에서는 누군가 끊임없이 속내를 털어놓고 부스 바깥에서는 이렇게 랜덤으로 들려오는 한 사람의 속내를 가만히 듣는다. 설은아 작가의 관객 참여형 전시 ‘세상의 끝과 부재중 통화’는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 10만 명의 목소리를 모았다. 책에는 10만 통의 전화 중 가려 뽑은 450통의 부재중 전화가 기록돼 있다. 어쩌면 내가 아는 사람도 이 안에 있지 않을까. 홀로 전화기를 들고 이 쓸쓸하고 아픈 말들을 뱉었을 사람들의 얼굴을 나는 끝끝내 알지 못할 테지만, 나는 이들의 목소리가 전혀 낯설지 않았고 마치 내게 걸려왔는데 받지 못한 중요한 전화처럼 자꾸만 울컥했다. 세상에 만만한 삶은 없다. 어른들은 각자 울음을 참고 있을 뿐 모두가 울고 있다. 이연실 출판사 이야기장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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