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이 PI첨단소재 인수전에 다시 등장했다. 예비 입찰 초반 투자의향서를 내지 않았으나 주관사 설득으로 예비실사에는 참여하기로 했다. 롯데는 경쟁사들에 비해 협상력에 우위가 있다고 판단하고 인수전 과열을 차단하기 위해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는 것으로 전해진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PEF)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와 매각 주관사 JP모간은 PI첨단소재 인수 후보군을 롯데케미칼, KCC글라스, 프랑스 알키마, 독일 솔베이, 베어링 PEA 등 5곳으로 압축했다. 글로벌 사모펀드 칼라일이 추가로 참여할 가능성도 열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롯데는 PI첨단소재 예비입찰에 참여하지 않고 인수전 동향을 관망하기로 방침을 세웠다. PI첨단소재의 사업 경쟁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으나 인수 경쟁이 과열돼 몸값이 지나치게 높아지는 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비입찰과 실사 단계를 지나 본입찰이 임박하면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다.
이 같은 전략 배경에는 PI첨단소재를 인수할 적임자라는 자신감이 자리한다. 롯데는 롯데케미칼, 롯데정밀화학 등 화학 계열사들을 보유하고 있어 그룹 내 수직 계열화가 가능하다. 최종 국면에서는 계열사간 시너지 효과까지 고려해 경쟁사보다 나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다만 딜 초반부터 인수 희망가를 제시해 경쟁을 심화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롯데는 인수 경쟁사들의 전략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알키마, 솔베이 등 글로벌 화학사들은 PI첨단소재를 인수를 통해 사업 기반을 유럽·미국에서 한국·중국 등 아시아로 확장하려 하고 있다. 기존에 하고 있는 사업이 인수가를 책정하는 비교 대상이 되는 만큼 PI첨단소재에 프리미엄을 얹어주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매도자 측은 PI첨단소재 지분 54% 가격으로 1조 원을 웃도는 금액을 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PI첨단소재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가 996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배 수준의 멀티플(EV/EBITDA)이 적용돼야 하는 가격이다. 글랜우드는 2020년 3월 PI첨단소재를 인수했을 때도 직전해 EBITDA 기준 약 21배의 멀티플을 적용한 바 있다. 인수 후보자들은 한 달 간의 실사를 거쳐 적정한 몸값을 가늠한 뒤 본입찰 참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 IB 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은 그룹 내 시너지, 글로벌 화학사들은 사업 영토 확장 측면에서 인수 효과가 클 것”이라며 “KCC글라스도 신사업이 필요한 만큼 인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예비입찰에 의향서를 냈던 한화솔루션과 일진머티리얼즈는 실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화솔루션은 김동관 대표의 승계 재원 마련과 다른 신사업을 우선순위에 놓기로 했다. 일진머티리얼즈는 스마트폰용 연성동박적층필름(FCCL) 기업 넥스플렉스 인수전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