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목욕탕에서


- 남호섭

이주 노동자 세 사람



팬티 입은 채

목욕탕에 들어왔다

수영장에 온 사람들마냥

자기들끼리는 싱글벙글

냉탕 온탕 들락날락하는데

아무 말 못 하고 째려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행복슈퍼 할아버지 하시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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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보여 주는 건 우리 손해고

다 못 씻는 건 지놈들 손해지

설날 앞둔 일요일 아침

뜨거운 김 피어오르는 목욕탕에서

한데 어울려 목욕을 한다





냉탕, 온탕이 깔깔 껄껄 웃는다. 바둑무늬 타일이 군데군데 이 빠진 채 웃는다. 시원하게 웃고, 모락모락 웃는다. 날이면 날마다 밑천 다 드러낸 사람들만 보다가 팬티 입은 이주 노동자들을 보니 모처럼 대접받는 것 같겠다. 목욕탕에서야 팬티 하나면 설빔 같은 정장 차림 아닌가. 산 설고, 물 설고, 낯 설고, 말 선 이국땅에서 일하다가 맞이한 설 연휴가 얼마나 꿀맛일까. 행복슈퍼 할아버지 덕분에 동네 터줏대감들 이맛살 펼쳐진다. 하마터면 질 뻔하던 게임, 일대일로 팽팽하게 균형을 되찾는다. 피부색과 문화는 달라도 한데 어우러진다. 냉탕과 온탕 사이, 이주와 토착 사이 무지개가 뜬다.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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