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석 달 만에 기존 3.1%에서 4.5%로 대폭 끌어올렸다. 연간 물가 전망치로는 2008년 이후 14년 만에 최고치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에 따른 국제 원자재·곡물 가격 상승세가 계속되는 가운데 거리 두기 해제 이후 내수 소비 회복과 정부의 추가경정예산 집행까지 겹치면서 당분간 물가 고공 행진이 꺾이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이에 비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대로 눈높이를 낮췄다. 물가 상승 압력과 성장 둔화 조짐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 침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한은은 26일 발표한 수정 경제 전망에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5%로 제시했다. 이는 올 2월 발표한 기존 전망치(3.1%)보다 1.4%포인트나 높은 수치다. 한은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로 4%대를 내놓은 것은 2011년 7월(4.0%) 이후 10년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특히 연간 4.5% 전망은 2008년 7월(4.8% 전망) 이후 13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5월 소비자물가지수를 시작으로 앞으로 수개월 5%를 넘는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유가가 내려가더라도 국제 곡물 가격은 한번 오르면 상당 기간 지속되는 만큼 내년 초까지도 4%대 물가상승률을 유지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당초 올 상반기로 봤던 고물가의 정점이 중반기로 늦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방기선 기획재정부 1차관도 이날 제2차 경제관계차관회의에서 “일부에서는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월 수준을 넘어 5%대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에 대한 눈높이는 3.0%에서 2.7%로 하향 조정됐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무역수지 악화와 코로나19 봉쇄 조치로 비롯된 중국 경기 둔화 우려 등을 반영한 결과다. 경상수지 흑자 전망치의 경우 700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로 29%나 줄어들었다. 설비투자 성장률 전망치는 기존 2.2%에서 마이너스성장(-1.5%)으로 뒷걸음질 쳤다. 내년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성장률은 각각 2.9%와 2.4%로 전망됐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형적인 공급 비용 상승의 충격이 유발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상황”이라며 “노동 경직성을 완화하고 세제 지원 등 기업의 공급 비용을 줄이는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