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증시의 주요 지수가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앞두고 일제히 떨어졌습니다. 인플레이션 공포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유럽중앙은행(ECB)이 그동안의 완화적 통화정책을 버리고 10년여 만에 처음으로 다음달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겠다는 내용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나스닥이 2.75% 내린 것을 비롯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과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각각 2.38%, 1.94% 하락했습니다.
시장의 관심은 10일 나올 5월 CPI에 쏠려있는데요. CPI 수치에 따라 인플레이션이 피크인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인상 움직임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죠. 월가에서는 “인플레이션이 내려오는데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앞으로 많은 고통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인데요.
내일 CPI가 예상을 웃돌 땐 증시에 직격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중요한 만큼 오늘은 물가 추이와 함께 경기침체와 기술주, 유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CPI, 5월보다 6월에 수치 더 나빠질 수 있어”…“더 강한 금리인상 필요할 가능성”
9일 다우존스에 따르면 5월 CPI는 1년 전과 비교해 8.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이는 4월과 같은 수치입니다. 앞서 8.2%에서 8.3% 얘기가 왔다갔다 했기 때문에 전년 대비 예상치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닌데요. 농산물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5.9%로 전월(6.2%)에 비해 줄어들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부정적 요소가 더 많은 분위기입니다. 일단 농산물과 에너지를 포함한 헤드라인 수치가 높습니다. 8.4% 얘기도 나오는데요. 단기 흐름을 볼 수 있는 전월 대비의 경우 헤드라인 수치가 0.7%로 4월(0.3%)보다 두 배 이상 상승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8%대의 인플레는 연준의 정책을 바꿀 수 없죠.
근원은 큰 변화가 없을 전망인데요. 마켓워치는 “월가는 인플레이션이 내려오고 있다는 어떤 신호라도 찾고 싶어하지만 5월 CPI에서 많은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며 “휘발유 가격과 꾸준히 오르는 렌트와 식료품 가격에 인플레 수치는 심지어 더 높아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선임고문은 이날 블룸버그TV에 “5월 CPI에 대해서는 시장의 컨센선스와 다른 예측을 할 이유가 없다”면서도 “걱정되는 것은 5월보다 6월의 수치가 더 나쁠 것이라는 점이다. 8.5%보다도 훨씬 높더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는데요.
에리언은 아직 9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6월에 인플레이션이 더 뛸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는 “연준의 정책실수에 인플레이션이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고 에너지 가격이 매달 오르고 있으며 렌트비와 식료품 가격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며 “모든 요소를 살펴보면 불행히도 인플레이션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지적했는데요.
원자재 가격은 이제 슈퍼 사이클(Super Cycle)의 시작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어제 아랍에미리트(UAE)의 수하일 마즈루아이 에너지부 장관이 중국 봉쇄가 완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유가가 정점이라고 볼 수 없고 러시아산이 시장에서 완전히 사라지면 한번도 보지 못한 가격에 도달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 아실텐데요. 그동안 고유가를 계속 점쳐왔던 제프 커리 골드만삭스 원자재 리서치 글로벌 헤드는 “단순히 오일과 가스뿐만이 아니라 금속과 농산물까지 지금은 원자재의 슈퍼 사이클이며 이는 이제 시작”이라며 “이들 분야는 10년 이상 저투자에 시달려왔다”고 우려했습니다. 수요가 많아도 한번에 공급을 늘리기가 어렵다는 뜻이죠.
암울한 분석은 또 있습니다. 전 재무장관 래리 서머스가 이끄는 팀과 다른 경제학자들이 수행한 연구에 따르면 이들은 지금과 1980년대의 물가추이를 분석했는데요. 당시 폴 볼커 연준 의장은 금리를 19%까지 인상해 14.8%에 달하던 인플레이션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14.8%는 아니기 때문에 과도한 금리인상이 필요없다는 말이 나오죠.
서머스의 팀은 그때와 지금은 CPI의 계산방법, 특히 주거비용 산정방식이 다르다는 점에 주목했고 같은 방법을 적용하면 현재의 근원 CPI가 무려 9.1%에 달한다는 점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서머스의 팀은 “근원 CPI를 2%로 되돌릴려면 볼커 전 의장이 달성했던 것과 비슷한 수준의 디플레이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요.
무슨 말입니까.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최소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금리인상이 필요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서머스는 인플레가 일시적이지 않음을 초기부터 주장했던 인물이죠.
“휘발유값 5달러 넘으면 경기침체 가능성 훨씬 커져”…CFO들 “경기침체 2023년 상반기 온다”
다만, 앞서 설명드렸듯 5월 CPI에서는 일부 완화 요소가 있을 수 있습니다. 연준의 긴축에 따른 경기둔화도 인플레이션에 도움이 되겠죠.
하지만 수요감축에 따른 물가상승률 완화는 또다른 걱정거리를 안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빠른 경기둔화나 침체 가능성이 그것인데요. 웰스 파고의 선임 이코노미스트인 사라 하우스는 “느린 하강이 될 것”이라며 “경기둔화가 인플레이션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상품 인플레이션 수치는 소비가 둔화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했죠.
실제 경기침체에 관한 얘기가 이날도 많이 나왔습니다. ‘3분 월스트리트’에서 10의 법칙(모기지금리+휘발유 가격)을 전해드린 바 있는데, 휘발유 값이 갤런당 5달러를 넘으면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진다는 분석이 제기됐는데요. AAA에 따르면 이날 휘발유 1갤런의 평균 가격은 4.97달러로 5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마크 잔디 무디스 애널리틱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아직은 휘발유가 경제의 성장을 훼손하는 시점이 아니며 올해 경기침체를 예상하고 있지 않다”면서도 “만약 휘발유값이 5.5달러나 6달러에 이른다면 이는 원유가 배럴당 150달러인 시점으로 그때는 우리는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요.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기록적인 휘발유 가격이 미국경제와 기업을 뒤흔들고 있다”며 “높은 에너지 비용이 항공사와 자동차, 식품 등의 산업의 소비패턴을 바꾸고 있다”고 봤습니다. 그만큼 유가와 휘발유 가격이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미국과 유럽이 국제유가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펼치기로 했다고 하는데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날지는 미지수입니다.
기업의 안살림을 책임지는 최고재무책임자(CFO)들도 경기침체를 우려합니다. 업무 특성상 CFO들은 상대적으로 보수적이라고 볼 수 있지만 여러 사람들의 생각이라면 또 다른데요.
CNBC의 CFO 서베이를 보면 응답자(22명)의 68%가 내년 상반기에 경기침체가 올 것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도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를 피할 수 있다고 답하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리스크 요인으로는 40%가량이 인플레이션을 꼽았고 23%가 연준의 정책위험, 14%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응답자의 41%는 3% 수준인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가 올해 말에는 4% 가까이 될 것이라고 했다는데요. 다우지수도 3만 선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 프랭클린 뮤추얼 시리즈의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카트리나 두들리는 “주택시장을 보면 아직 경제를 떠받치고 있고 공급망은 앞으로 약간 더 유연성이 있을 것”이라며 “시스템 전체적으로 재고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경기침체는 작은 규모가 될 것”이라고 봤는데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는 블룸버그TV에 “인플레는 일시적이고 모든 사람들이 이게 내려올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지금은 1970년대와 다르며 통제불능인 것도 아니”라며 “걱정스러운 것은 성장률이 떨어진다는 점인데 인플레가 높은 수준에서 다시 내려올 때까지 어떻게 성장을 유지하느냐”라고 진단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프트랜딩(연착륙)파의 강력한 근거 가운데 하나가 강한 노동시장인데 이는 급여인상을 불러와 인플레가 더 오래가도록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양날이 있다는 건데요. 엘 에리언 고문은 “노동시장이 강하다고 믿는다면 임금이 상승세를 유지할 것이고 인플레이션을 따라잡기 시작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인플레이션이 하락하는 것을 보기는 매우 어렵다”고 짚었습니다.
“침체와도 금리 높아 굳이 기술주 바라 볼 이유 없어”…“연준, 블러핑하고 있어” 수위 높은 발언도
계속 말씀드리지만 월가 관계자들이 예민해지고 있습니다. 증시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인 분위기가 나빠지고 있다는 점, 이것을 알고 계셔야 하는데요.
그린라이트 캐피털의 데이비드 아인혼은 “연준이 블러핑을 하고 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며 “인플레이션은 그렇게 빨리 사라지지 않는다”고 수위 높은 발언을 했는데요. 그는 금이 보험이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지나 산체스 찬티코 글로벌의 CEO는 “연준 리스크는 대체로 가격에 반영돼 있지만 시장은 유가가 계속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을지를 알아내려고 하는 것 같다”며 “유가는 우리를 경기침체로 밀어 넣을 수 있다”고 조언했는데요.
문제는 유가에 따라 증시 하락폭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에버코어 ISI의 전략가 줄리안 이매뉴얼은 치솟는 에너지 비용이 경기위축을 촉발하면 S&P500이 지금보다 30%가량 더 하락해 290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증권의 사비타 수브라마니안 주식 부문장의 생각도 들어볼 만합니다. 그는 “우리는 인플레이션이 갑작스럽게 상승하는 상황에 있다고 보며 내일 인플레 수치가 위로 더 올라가든 아니든 매우 힘든 상황을 대비해야만 한다”며 “연준의 유동성이 줄고 있으며 정부 지출은 중단됐고 전세계 중앙은행이 정책을 되돌리고 있다. 지난 사이클에서 투자자들에게 많은 돈을 벌어줬던 기술주 쪽을 포기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나는 고통이 (기술주에) 여전히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했는데요.
수브라마니안은 또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다음 18개월 동안 경기침체로 갈 가능성이 높은데 침체가 오더라도 기술주는 과거와 달리 매력이 덜할 수 있다는 건데요.
논리는 이렇습니다. 경기침체가 오게 되면 이는 인플레이션이나 스태그플레이션이 야기한 것으로 침체에도 금리가 상당히 높을 것이라는 말이죠. 고물가에 금리를 대폭 내리기가 쉽지 않은 고약한 상황일 거라는 얘기지요. 그래서 기술주나 장기투자를 해야 하는 기업을 굳이 원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침체가 오면 폭락 후 기술주가 매력적일 수 있는데 이번에는 고인플레에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아 안 그럴 수 있다는 말이죠. 한 번 고민해볼 대목인 것 같습니다. 존 나자리안 마켓 레빌이언닷컴 창업자는 “8%대가 온순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만약 5월 CPI가 온순하지 않다면 더 많은 변동성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헤드라인 CPI의 확실한 개선 없이는 인플레이션 대응은 실패입니다. 바이든 정부의 실패죠. 음식과 휘발유값이 뛰는데 “근원 CPI는 괜찮대”라고 이해할 국민은 일부 전문가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스테픈 스탠리 암허스트 피어폰트 증권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9월에 금리인상을 중단한다는 어떤 생각도 거의 불가능하다”고 했는데요. 헤드라인 인플레가 안 떨어지면 연말에도 중단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앤드류 슬림몬 모건스탠리 투자 자산운용의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증시가 연말에는 지금보다 높겠지만 여름 동안에는 요철이 있을 수 있다”고 봤는데요.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최소한 이번 여름은 쉽지 않다는 점 알고 있어야겠습니다. 밀러 타박의 수석 시장 전랴가 매트 메일리는 “사람들이 확실히 방어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이 지금 월가의 분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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