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편지 써보고 울었다는 어르신에…한글교실 하루도 닫을 수 없었죠"

◆15년째 '한글교실 봉사 활동' 퇴직교사 윤명자씨

봉사하던 한글교실 문 닫게되자

건물 임대 포기하고 교실로 사용

'배움 갈증' 이끌려 찾아온 학생들

글 읽으며 기뻐하는 모습 큰 보람







“저와 같이 공부하는 분들은 배움에 한(恨)이 맺힌 사람들입니다. 한글에 눈을 떠 비로소 며느리에게 생일 축하 편지를 쓰고 난 후 감정이 격해져 잠자리에서 남 몰래 눈물을 흘렸다는 학생의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경기도 군포에서 노인 무학자들을 대상으로 한글교실을 운영하는 퇴직 교사 윤명자 씨는 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5년간의 봉사 활동 시간을 이같이 기억했다.



윤 씨의 봉사 활동은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인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생들과 함께 양로원과 독거 어르신들을 위한 공연을 하면서 봉사 활동을 시작했으며 2007년 퇴직한 뒤 본격적으로 나섰다. 지인이 군포 하나로쉼터에서 무학 노인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한글교실을 맡아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지인의 부탁에 이끌려 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윤 씨는 보람을 맛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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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했다. 군포시가 2017년에 하나로쉼터 운영 대상을 청소년으로 좁힌 것이다. 그는 “노인 학생들은 글을 더 배우고 싶은데 장소가 마땅치 않아 교실을 폐쇄해야 할 형편이었다”며 “결국 노후를 위해 매입한 3층 건물 중 2층을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임대 수입마저 포기하고 노인들을 위해 건물 한 층을 무상으로 내놓은 셈이다.

윤 씨는 “학생 연령층이 70~80대인 만큼 하루라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바로 잊게 된다. 그래서 저희 교실은 1년 내내 방학이 없다”며 “하루도 강의를 중단할 수 없어 건물 3개 층 중 한 층을 내놓은 것뿐”이라고 했다.

주말을 제외하고 1년간 운영되는 교실인 만큼 졸업도 없다. 지병으로 사망하거나 요양원에 입원하면 그게 졸업이다. 한글을 깨우치기 위해 찾아온 사람의 사연도 제각각이다. 그는 “너무 가난해서 밥을 얻어먹기 위해 여덟 살 때부터 남의집살이를 하며 아이를 돌봤던 사람이 올해 83세가 됐다”면서 “글을 모르는데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책으로 남기고 싶어 저희 교실에서 공부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또 “네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열여섯 살부터 머슴 생활을 했다는 노인도 계셨다”며 “밤낮으로 일해 조그만 집을 한 채 마련한 그분은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한글교실을 찾았다”고 전했다.

그는 ‘언제까지 한글교실을 운영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런 분들이 계시는데 어떻게 한글교실을 중단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한글교실을 운영한 보람으로 글을 깨우친 분의 감사 인사를 꼽았다. 그는 “글을 배운 뒤 은행에 가서 돈도 찾을 수 있고 전철도 탈 수 있어 너무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보람을 느꼈다”며 “화장실이라는 글씨를 읽었을 때 너무 좋았다고 말해준 학생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는 봉사 활동과 관련해 첫발을 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퇴직 이후 봉사 활동을 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몰라 주저하는 사람이 많다”며 “어디서든 작은 일부터 찾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배식 봉사 활동 참여부터 시작하면 주변에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봉사를 하지 않고는 본인이 못 버틴다”면서 “주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렇게 봉사 활동에 눈을 뜨게 된다”고 조언했다.


김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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