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화학업체들이 올 2분기 일제히 우울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유가가 급등하며 원료가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코로나19 여파로 한때 호황을 누렸던 각사 ‘효자 제품’의 특수 효과는 사라졌다. 지난해만 해도 사상 최대 실적을 냈던 화학업체들은 일년 만에 급격한 수익성 악화를 겪자 글로벌 경영 환경의 불안정성에 대응하기 위해 사업을 다각화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나섰다.
9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대폭 감소한 화학 기업 중 한 곳이 롯데케미칼이다. 롯데케미칼은 연결기준으로 매출 5조5110억원, 영업손실 214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 동기 대비 매출액은 26.6% 증가했지만 당초 260억원 규모의 영업이익을 낼 것이란 시장의 전망과 달리 적자를 냈다.
롯데케미칼은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생산량 국내 1위 기업이다. 에틸렌의 원료인 나프타 가격이 상반기 치솟았지만 정작 에틸렌 제품은 수요가 부진해 가격이 하락했다. 수익성의 핵심 지표인 에틸렌과 나프타의 가격 차이(스프레드)는 전날 기준으로 140달러를 밑돌았다. 업계에서 통상적으로 손익분기점을 톤당 300달러로 본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재 에틸렌은 ‘팔 수록 손해’인 셈이다.
다른 화학업체들도 지난해 수요가 폭증한 대표 품목들이 올 상반기 들어 힘을 잃은 모습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코로나19로 특수를 누린 위생용 장갑 소재 NB라텍스와 타이어용 고무 등이 수요가 줄며 영업이익 전년 동기 대비 53% 줄어든 3540억원을 기록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2020~2021년 고수익성을 누린 주요 제품의 증설이 지속되고 있지만 아시아 지역 화학 수요 약세가 심화되고 있다”면서 “NB라텍스, 스티렌부타디엔고무(SBR), 고부가합성수지(ABS) 등 주요 스프레드 하락세도 지속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트레이닝복 등에 사용되는 스판덱스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없어서 못 파는’ 효성티앤씨의 효자 수출 품목이었지만 올해 수익이 전년 대비 8분의 1수준으로 줄었다. 스판덱스의 재고 일수도 지난해보다 9배 가까이 늘며 수요 회복도 더딘 모습이다. 2분기 영업이익이 59% 감소한 LG화학은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는 ABS의 수요가 부진하며 하반기에도 비슷한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공급망 리스크로 고전한 화학 업체들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하고 수익 구조를 안정화시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기존의 주력 사업에 의존하지 않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사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해 이익의 무게 중심을 옮겨가는 식이다. 4대 화학사 중 유일하게 전년 동기 대비 실적이 상승한 한화솔루션이 대표적이다. 한화솔루션은 2분기 케미칼 부문에선 영업이익이 20% 넘게 떨어졌지만 신사업인 태양광 부문에서 7분기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분기 기준 사상 최대인 277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LG화학은 석유화학부문의 부진을 첨단소재 부문에서 상쇄시키며 자연스럽게 전지 소재 회사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롯데케미칼 역시 글로벌 4위 동박 회사인 일진머티리얼즈의 인수합병(M&A)에 뛰어들며 배터리 소재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도 전기차 부품용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에 대한 연구개발(R&D)을 늘리는 등 친환경 모빌리티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