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황 악화가 가시화하면서 무역적자 누적으로 한국 경제가 침체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체의 19.7%(올 상반기 기준)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은 하반기 시작과 함께 전달 대비 줄었다. 특히 주요국 경기 침체에 따른 정보기술(IT) 기기 판매 감소, 기업의 재고 조정 등이 겹치면서 삼성전자 등 우리 대표 기업의 하반기 실적 악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칩4’에 이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 통과 등으로 지경학적 리스크마저 피하기 어려워 무역수지가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112억 1000만 달러로 올 6월(123억 5000만 달러)은 물론 5월(115억 4000만 달러)과 비교해서도 줄었다.
반도체 수출액이 몇 달째 횡보하는 것은 글로벌 수요 감소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구글 같은 데이터센터 운영 업체들은 이미 쌓아놓은 D램 재고와 경기불황 우려 등으로 반도체 구입을 꺼리고 있다. PC용 D램(DDR4 8Gb) 고정 거래 가격은 지난달 2.88달러로 1년 새 30%나 빠졌다. 여기에 차세대 D램인 DDR5를 지원하는 인텔의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인 ‘사파이어래피즈’ 출시도 잇따라 연기되면서 CPU 교체에 따른 메모리 업그레이드 효과마저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시장에서는 반도체 업황이 최소 10년래 최악의 하강 국면 초입에 들어섰다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엔비디아·인텔 등이 줄줄이 어닝쇼크에 가까운 실적을 내놓은 것이 결정타였다. 이승우 유진투자증권 센터장은 “미국 반도체 기업의 실적 하락 정도가 충격적인 수준인데 그만큼 수요절벽이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라며 “수요 둔화와 재고 조정의 이중고가 메모리반도체 섹터에서 예상보다 더 광범위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수출이 직격탄을 맞으면 올해 무역적자가 1996년에 기록한 역대 최대(206억 2000만 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명예교수는 “반도체 외에도 2차전지·에너지·방산 부문에 집중해 한국 경제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