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론]공정거래법 시행령 문제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대기업 총수 친족 범위 좁혔지만

예외조항 있어 법개정 취지 무색

'사실혼' 포함했지만 기준 불분명

공정위 '무소불위' 규제본능 논란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공정거래법은 대기업그룹에 동일인과 동일인 관련자에 대한 자료를 엄밀히 조사해서 제출할 것을 요구하고 미제출, 허위 사실 제출 시 동일인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2022년 8월 11일~9월 20일)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데 내용을 보면 기업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개정안은 동일인의 친족 범위를 현행 ‘혈족 6촌, 인척 4촌’에서 ‘혈족 4촌, 인척 3촌’으로 조금 줄이기로 했고 과거에 없던 ‘친생자가 있는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시켰다.



친족 범위를 줄이면서 제외된 혈족 5~6촌, 인척 4촌이 동일인 측 회사의 주식 1% 이상을 보유하거나 동일인 또는 동일인 측 회사와 채무보증, 자금 대차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는 다시 예외적으로 친족의 범위에 포함되도록 했다. 이렇게 되면 다시 ‘혈족 6촌, 인척 4촌’에 대한 조사로 되돌아간다. 공정위가 스스로 ‘현황을 파악하기 어렵다’고 인정한 ‘혈족 6촌, 인척 4촌’의 주식 보유 사실, 채무보증, 자금 대차 사실을 파악할 의무를 다시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집단 수범 의무가 과도’하지 않게 했다는 개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하는 답답한 행보다. 시원하게 버리지 못하는 공정위의 규제 본능이 재확인된다.

관련기사



‘친생자가 있는 사실혼 배우자’를 동일인 관련자에 명시적으로 포함한 것도 문제다. 사실혼 관계는 동일인의 프라이버시에 속하는 문제로서 동일인은 물론 동일인의 사실혼 배우자, 사실혼 배우자로 의심되는 사람, 친생자 등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볍게 다뤄서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를 35회 언급했고 제77회 광복절 축사에서도 33번 말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자유와 비밀을 대놓고 침해하겠다는 공정위는 이번 개정안에서 대통령의 말이 헛된 구호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공정위는 주요국에서도 경제 법령에서 사실혼 배우자를 특수관계인으로 본다고 했는데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국에는 대규모 기업집단 규제나 동일인 지정 제도 자체가 없다.

사실혼 관계에 대해 법원은 객관적 요건인 부부 공동생활이라고 인정할 만한 혼인 생활의 실체(부부로서의 공연성, 동거 여부, 대외적 공동 활동 등)가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친생자 유무는 아무 관련성이 없음에도 공정위가 친생자의 존재를 사실혼 관계 인정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근거가 없다. 자녀 없는 사실혼은 묵인돼야 하고 자녀가 있으면 만천하에 까발려도 좋다는 것인가.

국내에 사실혼을 인정해주는 기관도 없다. 오로지 사실혼 배우자가 어떤 혜택을 받기 위해, 예컨대 연금 수급권, 산재보험금 수령권, 임차 보증금 반환 청구권 등을 인정받기 위해 스스로 사실혼임을 주장할 때 법원에서 혼인 의사 합치, 부부 공동생활의 실체 등을 고려해 개별 사안마다 달리 판단한다.

형사처벌 규정은 그 내용이 명확해야 한다. 사실혼이라는 이처럼 불분명한 개념을 기초로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은 죄형법정주의 위반이고 명확성의 원칙 위반이다. 동일인이 자신에게 불리한 사항을 스스로 밝혀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헌법과 형사소송법 위반이다. 우리 헌법 제12조 제2항은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할 권리’를 규정하고 있고 이에 따라 형사소송법에서는 피의자와 피고인의 진술거부권을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의 무소불위 규제 폭주는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