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달러 귀한 이 시국에'…중앙은행 달러로 '29조' 이자놀이한 스위스 은행들[Weekly월드]

스위스 중앙은행 비상 달러 공급 시스템

9월 이후 조달 신청 급증…금융위기 이후 최대

'제2금융위기일까' 세계가 '화들짝'

알고보니 "저렴한 조달금리 활용한 손쉬운 돈벌이"

세계 비판에 이번주 달러 공급 다시 '제로'로

스위스중앙은행(The Swiss National Bank·SNB) 로이터연합뉴스스위스중앙은행(The Swiss National Bank·SNB) 로이터연합뉴스




쉽게 돈 벌 기회 앞에서는 세계적인 금융 불안도 남의 일이었을까.



신뢰와 전통의 대명사인 스위스의 금융기관들이 최근 비상사태에 대비해 현지 중앙은행이 마련해 놓은 달러 공급 시스템을 손쉬운 초단기 돈벌이 용도로 썼던 정황이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 금융권을 보는 세계의 시선이 곱지 않다.

시작은 9월 14일 이었다. 스위스중앙은행(SNB)가 매 주 수요일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달러 경매에 은행 한 곳이 5000만 달러(709억원)를 조달 신청했다. SNB의 달러 경매에 시중 은행이 참여한 것은 약 10개월 만에 처음이다.



SNB의 달러 경매는 매주 열리긴 하지만 비상용이다. 이 제도는 현지 시중은행의 달러 유동성이 일시에 메말라 금융 시장이 붕괴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 SNB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손잡고 마련한 일종의 비상 달러 공급 시스템이다. 시중은행이 경매에서 달러 조달을 신청하면 SNB가 미국 연준과 맺은 달러 스왑을 기초로 달러를 조달해 제공하는 구조다. 애초 유동성 부족에 대비한 제도인 만큼 평소에는 경매에 참여하는 은행이 거의 없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8년 간 매 주 단 한 곳도 신청이 없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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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은 9월 14일이 끝이 아니었다. 2주 뒤인 9월 28일에도 한 곳의 은행이 2000만 달러(284억 원)를 빌려가더니, 그 다음 주에는 9곳 은행이 31억 달러(4조3946억 원)를 신청해 달러를 빌려갔다.

이후 신청은 급증했다. 10월 둘째주 신청 은행은 15곳, 조달 규모는 62억7000만 달러(8조8884억원) 로 늘었다. 10월 19일에는 급기야 17개 은행이 110억9000만 달러(15조7212억원)를 SNB에서 조달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단일 경매에서 조달한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9월부터 10월까지 현지 은행이 중앙은행의 달러 스왑라인을 통해 조달한 달러를 합치면 우리 돈으로 약 30조 원에 달한다.

평상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스위스중앙은행의 비상 달러 공급 시스템에 신청자가 몰렸다. 사진=SNB평상시 거의 사용되지 않는 스위스중앙은행의 비상 달러 공급 시스템에 신청자가 몰렸다. 사진=SNB


전 세계 금융 당국과 시장은 곧장 긴장했다. 연준의 가파른 금리 인상의 여파로 달러 가치와 전세계 국채 금리가 치솟는 시기인 만큼 달러 유동성 위기 가능성에 각국이 촉각을 세웠다. 특히 9월 말 영국에서 감세 정책의 후폭풍으로 국채 금리가 치솟아 연기금이 붕괴하고 금융 시장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던 시기였다. 스위스 2위 은행인 크레디트 스위스가 파산할 수도 있다는 뜬 소문이 파다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로이터 통신은 “스왑 라인은 시장이 안정될 때 거의 사용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정황이 나오기 시작했다. 현지 은행들이 중앙은행에서 조달하는 달러가 저렴한 점을 노리고 일종의 단기 시세 차익을 올리기 위해 국가 간 달러 스왑을 활용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로이터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은행들은 일주일 동안 SNB에서 달러를 빌릴 수 있다. 은행들은 이 달러를 곧장 프랑으로 바꾸고 이를 일주일 간 시중에 빌려주거나 심지어 SNB에 그대로 예치 해두더라도 약 0.25~0.3%포인트의 금리 차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과거 2020년에도 현지 군소 은행들이 이같은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이 분석은 설득력을 얻었다. 급기야 현지 1위 업체인 UBS의 이코노미스트 알레산드로 비는 “SNB는 이같은 행위를 대해 일련의 조치를 취하기 바란다”며 “스위스의 은행들이 비상 시스템을 이용해 돈을 벌 경우 SNB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은행들의 단기 이자 놀이에 금융 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한 달러 파이프라인이 폐쇄될 지도 모른다는 지적이었다.

결국 이번 주 SNB의 달러 경매에는 한 곳의 은행도 참여하지 않았다. SNB는 직접적인 논평을 하지는 않았지만 갑작스레 신청이 사라진 점을 고려할 때 비판을 의식한 SNB가 사전에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중단을 촉구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블룸버그통신은 “SNB는 스위스 은행들이 2008년 이후 가장 많은 달러를 조달한 지 일주일 만에 연준이 제공한 긴급 달러 스왑 시설을 이용해 손쉬운 통화 거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달러 유동성에 대한 수요 증가는 스위스 은행시스템의 유동성 문제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었다”며 “은행들이 금리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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