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5일부터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고 내년 사업 계획을 논의한다. 회의에 참석할 삼성전자 고위 임원들은 경기 둔화를 극복할 전략을 구상하기 위해 머리를 맞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력인 반도체 사업은 극심한 수요 부진을 겪고 있는 메모리 사업보다 파운드리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회의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불참할 가능성이 높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5~16일 디바이스경험(DX) 부문 글로벌 전략회의를 개최한다.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22일 회의를 열 예정이다. 두 부문의 수장인 한종희 DX부문장과 경계현 DS부문장이 각각 회의를 주관한다.
삼성의 글로벌 전략회의는 매년 6월과 12월 두 차례 국내외 회사 임원급이 모여 사업 부문별 업황을 점검하고 사업 계획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다. 통상 12월 회의는 연말 인사 이후 새 경영진과 임원, 해외 법인장까지 모두 귀국해 참석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온·오프라인을 병행해 진행됐다. 올해도 해외 법인장들은 현지에서 온라인으로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글로벌 전략회의에서는 글로벌 경기 침체를 극복할 방안 마련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경기 악화로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31.4% 감소하는 ‘어닝쇼크’를 경험했다. 수요 둔화 영향으로 재고 자산 역시 지난해 말(41조 3844억 원)에 비해 38.5%나 늘어난 57조 3198억 원을 기록했다.
사업 부문별로 보면 TV·스마트폰 등 완성품 판매를 담당하는 DX 부문은 소비 침체와 원자재 가격 압박을 이겨낼 가격 정책을 검토할 것으로 관측된다. 삼성전자 DX 부문은 이달부터 주력 태블릿PC 제품 ‘갤럭시 탭S8’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전사적인 비용 절감 방안도 공유될 것으로 예측된다. 사업부는 최근 ‘DX 부문 비상경영체제 전환’이라는 공문을 사내 연결망에 올리고 해외 출장, 소모품 비용 등을 줄일 것이라는 내용을 알리는 등 만전을 기하는 모습이다.
반도체 한파를 겪고 있는 DS 부문은 내년 반도체 시황을 전망하고 첨단 공정 수율 현황 등을 점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주력인 메모리 사업이 침체기를 겪고 있는 만큼 내년에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 역량 강화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만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 매출은 회사 낸드플래시 사업 매출(43억 달러)을 처음으로 뛰어넘은 55억 84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고객사 주문에 따라 칩을 생산하고, 반도체의 종류도 다양한 시스템 반도체 분야 특성상 메모리 사업에 비해 시장 변동 영향을 덜 받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선단 공정 확보에 속도를 올리며 1위 업체 TSMC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6월 3㎚(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 생산 서비스를 시작한 뒤 해외 유력 고객사들과 양산 계획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2025년 2나노, 2027년 1.7나노 반도체를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차세대 반도체 생산 기술로 꼽히는 패키징 분야에서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이달 진행된 조직 개편을 통해 기존 DS 부문 내 어드밴스드 패키징 태스크포스(TF)를 정식 부서로 격상시키기도 했다.
아울러 고객사 주문 전에 미리 제조 공간을 만들어 놓고 미래 수요에 대응하는 ‘셸 퍼스트(Shell First)’ 전략으로 불황에도 공격적인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 측은 평택과 화성, 미국 테일러 신규 공장을 중심으로 2027년 선단 파운드리 생산능력을 올해 대비 3배 이상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올해 회장으로 취임한 이 회장은 글로벌 전략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재계에 따르면 매년 열린 글로벌 전략 회의에 이병철 창업 회장, 이건희 선대 회장이 참석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회의 참석자들이 자유롭게 사업 전략을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