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대만이 최대 혜택을 입은 반면 한국은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28일 한국무역협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반도체 시장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9.7%에서 지난해 17.4%로 급증한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11.2%에서 13.2%로 높아지는 데 그쳤다. 미국 반도체 시장에서 주춤해진 한국이 질주하는 대만에 역전당한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초격차 기술 개발과 설비투자, 인력 육성 등을 위해 최소한 경쟁국과 비슷한 수준으로 지원해줘야 한다. 하지만 국회는 반도체 산업을 지원한다면서 ‘K칩스법’마저 반쪽짜리로 만들었다. 최근 국회는 설비투자에 대한 대기업 세액공제 비율을 현행 6%에서 고작 8%로 늘리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이 올해 반도체 설비투자 기업에 25%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는 반도체법을 통과시킨 것과 대비된다. 대만도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R&D)·설비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15%에서 25%로 높이는 법안을 발의했다. 수도권 규제와 무관하게 반도체 등 전략산업 관련 학과의 정원을 풀어주는 국가첨단전략산업법 개정안도 특혜 시비에 가로막혀 용두사미가 되고 말았다. 오죽하면 4대 반도체 학회가 “K칩스법은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단절하는 것”이라며 재논의를 촉구했겠는가.
국내 반도체 산업은 최악의 빙하기를 맞았는데도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차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이 6년 만에 계열사 사장단 긴급회의를 열어 비상 경영에 돌입한 반도체 부문의 위기 상황을 공유하고 대비책을 논의한 것도 이런 절박감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가 반도체 등의 전략산업을 지켜내려면 더 이상 방관하지 말고 반쪽 지원법을 조속히 경쟁국 수준으로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