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K선진원자로'의 담대한 도전 [로터리]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주한규 한국원자력연구원장




1970년대 오일쇼크, 2010년대 셰일혁명 등 에너지 수급에서의 대사건은 국제 관계의 역학 구도를 바꿔왔다. 오늘날의 에너지 지정학 관점에서는 에너지 자립도를 대폭 높이고 탄소 감축을 실현할 나라가 미래를 지배할 것으로 보인다. 전 지구적인 탄소 중립 필요성과 더불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부각된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 때문이다. 천연 에너지 부존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전력망이 고립된 우리나라에서 탄소 감축과 에너지 안보 강화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원자력이다.



앞으로 원자력은 지금보다 훨씬 다양하게 이용될 것이다. 전력뿐 아니라 수소와 공정열 생산, 난방, 담수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경제 전반에서 화석연료를 대체할 것이다. 육지뿐 아니라 해상·해저·극지·우주 등 인간의 발길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핵심 에너지원이 될 것이다. 이용이 늘어날 만큼 안전을 강화하고 폐기물 발생을 줄이는 기술도 현재 활발하게 개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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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선진원자로(advanced nuclear)’ 개발에 큰 붐이 일고 있다. 전통적인 수냉각 원자로 외에 액체금속, 기체, 용융염 등 다양한 냉각 방식의 소형원자로(SMR) 개발에 민간 기업 수십 곳이 뛰어들었다. 미국 정부는 이 중 유력한 몇 종의 선진원자로 실증에 연간 약 2억 5000만 달러(약 3200억 원)를 지원한다. 영국은 2029년까지 고온가스로형 선진원자로 실증에 5500만 파운드(약 830억 원)를 투입한다. 프랑스도 사용후핵연료를 적게 만들어내는 선진원자로를 2030년까지 실증한다는 계획이다. 중국은 이미 소규모 고온가스로 실증에 성공했다. 선진원자로 시장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도 일찌감치 선진원자로의 가치를 알아보고 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2012년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인가를 받은 SMR인 ‘스마트(SMART)’를 포함해 선진원자로인 소듐냉각고속로, 초고온가스로 등을 꾸준히 개발하며 핵심 기술을 축적해 왔다. 지난 5년여 탈원전 기간 동안 이들 선진원자로 개발이 퇴행했지만 이제 다시 기술 실증과 시장 선점에 속도를 내야 한다. 다행히 SMART를 비롯한 우리나라의 선진원자로에 대한 해외 수요처와 국내 민간 기업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제 ‘K선진원자로’를 가지고 에너지 세계지도에 변화를 일으키는 담대한 도전에 나서야 한다. 정부·기업·연구소·대학이 역량을 한데 모아 K선진원자로를 실증하고 수출을 실현할 전략을 수립해 추진해야 한다. 세계 SM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 공격적인 투자도 이끌어내야 한다. 기술 혁신을 이룰 젊은 연구원들이 열성적으로 선진원자로 개발에 뛰어들도록 매력적인 연구개발 환경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K원자력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신뢰이다. 국민들이 안심할 수 있는 원자력이 되기 위해서는 원자력 시설의 철저한 안전 운영과 더불어 원자력계의 진솔하고 적극적인 소통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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