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 개혁은 낡은 공장법 시대의 근로환경을 벗어나는 게 목표다. 노동 개혁은 궁극적으로 노동시장 이중구조 등 불평등을 해소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 개혁의 성격도 띤다. 호봉제 등 연공서열에 따라 오르는 임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늘렸다. 주 단위 연장근로시간 등 획일적·경직적 근로시간은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디지털 산업시대에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정부의 노동 개혁은 성공 사례를 찾기 힘들다. 노동 개혁의 성공 관건은 국민의 공감대가 최우선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현장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사회적 대화를 통해 공감대를 넓히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을 볼 때 노동 개혁을 추진하는 환경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정부와 여당은 과거 노동 개혁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고 개혁의 동력이 식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서울경제는 노동 개혁의 필요성과 과제를 진단하고 노사상생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최영기 한림대 객원교수와 박지순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송시영 서울교통공사 올바른노조 위원장과 좌담을 마련했다.
이정식 장관
“개혁은 노사 신뢰·정부 의지 3박자 중요”
“6.25때 만든 근로기준법, 현실과 안맞아”
"유연·안정 등 핵심으로 사회적대화 할 것"
“개혁은 노사 신뢰·정부 의지 3박자 중요”
“6.25때 만든 근로기준법, 현실과 안맞아”
"유연·안정 등 핵심으로 사회적대화 할 것"
-오랜 시간 실패했던 노동 개혁이 결실을 거둬야 하는 상황이다. 노동 개혁 과정과 배경, 나아갈 방향은.
△이정식 장관=현재 노동시장은 제도와 의식·관행이 맞지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노조) 14%는 두텁게 보호되고 (비노조) 86%는 법의 사각지대에 있다. 그래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심화됐다. 이 상태를 두면 시장이 작동하지 않고 사회 통합도 안 된다. 결국 모두에게 부담이다. 노동시장의 핵심인 근로시간과 임금 제도를 두고 모두 안 맞는다고 한다. 획일적이고 경직적이기 때문이다. 공정한 사회 관점으로 봤을 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우리가) 입고 있는 것이다. 노동 개혁의 핵심은 유연·공정·안전·안정이다. 시대 변화에 맞게 다양한 보상을 통해 약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것이다. 노동 개혁은 5년 동안 (그 이후에도 꾸준히) 해야 할 일이다.
△최영기 교수=윤석열 정부의 노동 개혁이 과거 개혁 방식과 다른 점은 갈등을 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갈등을 두려워하거나 노동 개혁에 대한 반발과 저항을 회피하지 않고 갈 길을 간다. 문재인 정부가 했던 노동정책을 보면 약자에 대한 지원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최저임금 만 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접근이었다. 구조 개혁을 통해 시장 내 질서가 바뀌어 제도적으로 약자가 올라오고 강자가 양보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개혁에 대한) 방향을 잘 잡았다.
△이 장관=갈등을 피하지 않는다는 좋은 말씀을 했다. 어느 나라든 개혁을 하면 기득권이 저항하고 반대 진영이 있다. 돌파하려면 세 가지가 갖춰져야 한다. 노사 신뢰와 정부 의지다. (정부는) 나라를 위해서, 약자를 위해서, 미래 세대를 위해서 개혁을 하겠다. 여기에는 절차적·내용적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 대화는 전문적이고 균형된 정책 과제와 잘 버무려져야 한다.
△송시영 위원장=노동 개혁은 대단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밑바탕에는 노사와 협치가 있어야 한다. 노동자가 열심히 일할 환경을 주고 갈등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걱정은 개혁을 공공 부문에서 먼저 하겠다는 정책 의지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노동 개혁 과제인) 직무급제 방향은 이해하지만 공공기관의 업무 특성과 성과 측정을 고려할 때 도입하기 어렵다.
결국 평가도 기성세대가 하는 것 아닌가. (개혁 과제는) 일률적인 적용보다 사업장과 상황에 따른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최 교수=동의한다. 하지만 오래도록 강화된 연공주의적 패러다임은 분명히 있다. 우리 사회는 연공 서열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연공주의적 임금 체계와 인사 관리가 너무 팽배해졌다.
기업은 (고임금) 비용을 기업 바깥으로 내보냈다. 비정규직과 하청을 늘린 것이다. MZ세대에게 현재 연공주의 벽은 넘기 힘들다. 기업의 기득권 보호 논리가 정규직 뽑기를 어렵게 했고 청년 채용의 벽을 높였다. 노동시장의 연공주의는 약화돼야 한다. 직무주의·전문가주의·능력주의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노동시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 장관=좋은 말씀이다. 정부의 핵심 철학은 상식과 공정의 회복이다. 근로기준법은 1953년 6·25전쟁 중 만들어졌다. 지금까지 그 틀을 가져오는 게 맞는가. 연공이 핵심 보상이라는 인식이 지금도 통하는지, 상식에 맞는지 묻고 싶다. 같은 일을 하는데 대기업이 100을 벌면 중소기업은 40~50을 번다. 이게 맞는 건가. 연공급은 고용 창출을 막고 세대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불안 요소다. 정부는 (노동 개혁을 통해) 노동자에게 공정한 보상을 찾아주겠다는 것이다.
박지순 원장
“최소 10년간 임금개혁 말 나왔지만 제자리”
“4차산업시대 맞는 다양한 평가 시스템 필요”
“현장 목소리 담아 '가지 않을 길' 개척을”
“최소 10년간 임금개혁 말 나왔지만 제자리”
“4차산업시대 맞는 다양한 평가 시스템 필요”
“현장 목소리 담아 '가지 않을 길' 개척을”
△박지순 원장=최소 10년간 임금 체계 개혁이라는 말이 안 나온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항상 모든 개혁 메뉴 상위에 올랐지만 실패했다. 임금 체계는 법으로, 일률적으로, 획일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노사합의하고 다양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임금 직무급의 기준을 만들고 평가 시스템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 (이 장관의 말처럼) 산업화 시대 노동법의 가장 큰 목표는 획일적인 최저기준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제는 다양성과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노동법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율과 공정이다. 공정 없는 자율은 타율이다. 혁신도 우리의 과제다. 혁신이 없으면 일자리를 늘려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이루기 어렵다.
-노동 개혁 과제로 연장근로시간 총량 관리,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 등 다양한 근로시간제가 제시됐다. 장시간 근로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송 위원장=일부는 공감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과도하다. 선택적 근로제는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수요가 많다고 들었다. 문제는 현재보다 앞으로 근로시간이 더 늘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불신이다. 정부의 정확한 설명과 토론이 필요하다.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반영해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최 교수=(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처음 공론의 장에 나올 때 주52시간제를 허무는 것처럼 비춰졌다. (정부 설명처럼) ‘노사 자율 선택의 폭이 확대되고 근로시간 확대가 아니다’라고 보이지 않았다. ‘주52시간제 경계를 터서 주60시간, 70시간으로 확대하는 건가’라는 불안감을 줬다. 개혁의 성패는 결국 공론의 장에서 어떻게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느냐에 대한 문제다.
△이 장관=정부 방침이 확정되면 (불안할 필요가 없다는 게) 드러날 것이다. 정부는 건강권을 보호하면서 선택적 시간 주권을 회복하도록 도울 것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노동 개혁 권고안대로) 연장근로시간을 연 단위로 관리하면 근로시간 총량이 되레 30% 준다. 저는 제도 간 정합성을 중요하게 여긴다. 제도가 현실에 적합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박 원장=근로시간 단축이 마치 주52시간제인 것처럼 공식화됐다. 사실 근로시간이 단축될 때 유연근로제가 함께 정비됐어야 한다. 이 방식이 서구 모델인데 우리는 기회를 놓쳤다. 근로시간 개혁의 핵심은 선택과 자율이다. 문제는 근로자 인식 속에서 (근로시간을) 회사가 모두 정한다는 인식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노동 착취 우려가 나온다. 이를 막기 위한 회사 내 제도 운영의 감시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노조가 할 일이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은) 근로자대표제로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