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에 치우친 우리 수출이 위기를 맞았다. 불황으로 칩이 덜 팔리는 동안 우리 경제를 지탱해줄 보완재가 절실하다. 정부 안팎에서는 에너지 위기와 탈탄소 드라이브의 와중에 몸값이 오른 원자력발전, 우크라이나 사태로 수출 효자 품목으로 급부상한 방산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전략산업을 매개로 해외 판로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역내 탄소 감축 압력이 커지면서 동구권을 중심으로 석탄발전을 대신해 무탄소 전원인 원전을 새로 들이려는 국가가 늘어나고 있다. 일례로 폴란드는 2040년까지 원전 6기 건설을 추진 중이고 체코도 두코바니 원전 건설에 대한 공개 입찰에 곧 들어간다. 폴란드가 예고한 원전 사업 규모만도 40조 원을 웃돈다. 이는 한 해 반도체 수출액(2022년 기준 1292억 달러)의 25%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방산 수요가 커진 점도 주목할 만하다. 폴란드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K2 전차 980대 등을 수입하기로 했으며 계약 규모는 10조 원을 웃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과 원전을 결합한 일종의 ‘패키지 수출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해외 원전 입찰에 관여하는 한 정부 인사는 “상품성을 중시하는 여타 품목과 달리 원전 수출은 국가 간 관계가 크게 작용한다”면서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과의 경쟁에서 앞서려면 방산 수출을 늘려 상대국과 안보적 유대 관계를 다지고 이를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2차전지를 비롯한 주력 산업의 밸류체인을 공고히 하기 위해 자원 부국인 중남미 국가와의 협력 필요성도 크다. 2차전지의 핵심 소재인 리튬만 하더라도 전 세계 매장량의 55% 이상이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에 집중돼 있다. 중남미와의 광물 수급 라인이 제때 구축되지 않으면 반도체 수출 공백을 그나마 메우던 다른 산업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는 핵심 원료의 대부분을 중국에서 들여오는 상황이어서 공급처 다변화가 요구된다.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차전지의 핵심 원료로 분류되는 산화리튬·수산화리튬(81.2%), 산화코발트·수산화코발트(83.3%), 황산망간·황산코발트(77.6%) 등의 대중(對中) 수입 비중은 80% 수준으로 매우 높다. 자원 부국과의 접점을 늘려야 제2의 요소수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