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법복을 벗은 검사가 최근 5년 내 최대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 상반기 인사에서 의원면직(사직)을 알린 검사 가운데 절반이 평검사로 파악됐다. 검찰 근무 경험이 짧은 젊은 검사들이 줄이탈하고 있어 일각에서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등 임관 이후 검찰이 겪은 위기가 이른바 ‘대탈출’의 도화선이 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7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퇴직 검사는 146명에 달했다. 111명이었던 지난 2019년과 비교해 76%가 급증하며 최근 5년 내 최고치를 기록했다. 검사 퇴직행렬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평검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경제가 지난 2019년 이후 올해까지 검찰 정기 인사를 분석한 결과 올해 의원면직된 검사 26명 가운데 15명이 평검사로 파악됐다. 특히 이 가운데 변호사시험 출신 저연차가 10명으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변시 10회로 검사생활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법복을 벗은 사례도 있었다.
과거에는 오랜 검사 생활을 끝내고 명예퇴직을 하거나 부장검사 등 고위직에서 법무법인(로펌)으로 옮기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젊은 검사들의 이탈이 늘고 있다. 실제로 2019년 정기인사에서 의원면직된 검사 54명 가운데 평검사는 단 8명에 불과했다. 2020년(13명)과 2021년(6명)에도 평검사는 각각 1명 4명이었다. 하지만 2022년에는 18명으로 늘었다. 이는 전체 의원면직 검사 수(39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치다. 정기검사가 아닌 연중 수시로 법복을 벗는 검사도 많아 실제 이탈하는 젊은 검사 수가 더 클 수 있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전언이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법조계 관계자는 “연차가 높은 검사들의 경우 20년 근속일 때 받는 명예퇴직금으로 인해 정기인사 때 의원면직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명예퇴직금과 상관 없이 검찰을 떠나는 평검사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중 법복을 벗는 검사도 증가 추세”라며 “때문에 실제 검찰을 떠나는 저연차 검사 수는 더 많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짧게는 1년에서 길어도 4~5년을 근무하지 않고 경력법관이나 로펌행을 택하는 검사들이 늘고 있다는 얘기다.
검경수사권 조정 도입 후 두 자리수 기록
고연차 퇴직은 줄어…역피라미드식 변화
일각선 MZ세대 맞지 않는 조직 문화 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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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경우 일반 법조경력자 법관 임용예정자 136명 중 검사는 19명에 달했다. 이는 경력법관 임용이 시작된 2013년 이후 최고치다. 검사 출신 법관 임용자는 매년 한 자릿수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검경수사권 조정이 도입된 2020년 들어 15명이 임용,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한 뒤 증가하고 있다.또 경력 요건 5년 이상이 안 되는 어린 검사들은 변호사 개업이나 로펌 입사 등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젊은 검사가 릴레이 이탈하는 배경에 최근 몇년새 겪은 이른바 ‘검찰 수난사’가 자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이후 검경 수사권 조정에 이어 검수완박, 검찰 출신 대통령 선출까지 롤러코스터를 탄 검찰의 명운이 이들의 불안감을 부추기거나, 미래에 대한 회의감을 들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검찰총장 등 간부 기수가 연소화되면서 높은 연차의 간부들이 검찰에 남는 경우가 많아진 데 반해 저연차 검사들의 이탈은 늘고 있어 일각에서는 검찰 인력 구성이 역피라미드식으로 점차 변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2020년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수사지휘권을 상실했다. 또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범죄와 대형참사)중에서도 일정 액수·규모를 넘는 항목만 직접수사를 개시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2대 범죄(부패·경제범죄)’로 축소하는 법안을 밀어부쳤다. 새 정부 출범 후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 복구)’ 시행령으로 이를 사실상 무력화했다고는 하지만 이 과정 중 검찰 구성원들, 특히 저연차 검사들의 불안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검찰 관계자는 “검수완박 당시에는 연차를 불문하고 검찰 전체가 혼란이었는데 저연차들이야 오죽하겠나”라며 “검찰이 뿌리부터 정치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데 상당히 충격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언급했다. 이어 “간부들이야 오랜 기간 검찰에 몸 담으며 조직에 대한 신뢰나 소속감이 있었겠지만 검사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기도 전에 이 같은 혼란을 겪은 저연차들 입장에선 어찌보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 “4년 뒤 정권이 바뀌게 된다면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이 있는 것 같다”며 “검수완박 법안이 헌법재판소에 가 있는 만큼 지켜보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한편 법조계 일각에서는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 업무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과도한 업무와 딱딱한 조직문화 때문에 MZ세대인 젊은 검사들이 좀더 자유로운 로펌 등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