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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 전속작가 없으면 갤러리도 아니다

조상인 문화부 차장·미술전문기자





“‘전속 작가’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제대로 운영하는 화랑이 스무 곳이나 된다고요? 열 곳도 겨우 채울까 말까인데, 무슨!”



말 꺼낸 입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얼마 전 2022년 미술 시장을 정리하고 2023년을 전망하고자 공기관이 주최한 미술 전문가들의 비공개 세미나 자리에서 오간 대화다. 맞은편의 모 교수는 “조 기자 너무 너그러운 것 아니냐”면서 “연예 기획사가 아티스트를 위해 투자하듯 전속 작가를 위해 다양한 기획과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갤러리를 헤아린다면 10곳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이날 대담은 지난해 ‘프리즈 서울’을 통해 한국 미술이 큰 관심을 받았지만 국내 최고 권위의 아트페어 ‘키아프(kiaf) 서울’이 보여준 한국 미술계의 경쟁력에 대해서는 “기대가 높은 만큼 풀어야 할 숙제가 많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특히 갤러리의 역할과 경쟁력에 관한 지적이 두드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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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경영지원센터가 집계한 국내 화랑 수는 598개(2021년 기준)다. 그중 연간 작품 판매 수익이 5000만 원 미만인 곳이 전체의 63%다. ‘억’ 소리 나는 그림 값만 들어왔다면 의외일 테지만 이게 현실이다. 연간 그림 판매로 1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거둬들이는 데는 단 6곳(1%)뿐이며 10억 원 이상 매출을 올리는 갤러리는 30여 곳 정도다. 극심한 쏠림 현상이다.

대다수의 화랑은 영세하고 열악하다. 작가 발굴을 못해서 쪼그라들었는지, 형편이 어려워서 작가 후원을 못하는 것인지는 닭과 달걀의 논쟁만큼이나 알기 어려운 일이다. 분명한 것은 작가를 발굴하고 그 작가를 위해 꾸준히 전시를 열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전속 작가제’는 갤러리의 본령이라는 점이다.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처럼 작가에 대한 화랑의 투자가 필요한데 대다수 화랑은 안 팔리는 작가에게 투자하지 않고 잘 팔리는 작가 작품만 구해다 판다. 그림만 떼어다 파는 사람은 딜러다. 화상(畵商)도, 갤러리스트도 아니다. 13세 보아를 ‘아시아의 별’로 키운 SM엔터테인먼트나 방탄소년단(BTS)이 월드스타로 성장하기까지 안정적으로 지켜봐준 하이브처럼 갤러리는 ‘전속 작가’를 위해 발 벗고 뛰어야 한다.

11일 성동구 성수동 더페이지갤러리에서는 이수경 작가의 개인전 ‘이상한 나라의 아홉용들’을 마무리하며 일본 야요이쿠사마미술관의 다테하타 아키라 관장과 세계비엔날레협회장을 지낸 이용우 상하이대학 석좌교수의 대담이 진행됐다. 이수경 작가를 가운데 두고 ‘위기 시대의 예술’을 주제로 다채로운 이야기가 오갔다. 당장 작품 한 점 더 파는 것보다 진지한 예술의 역할이 더 중요한, 의미 있는 자리였다.

이수경 작가는 두손갤러리와 더페이지갤러리 양쪽에 속한 전속 작가인데 두 화랑이 작가 한 사람을 위해 애쓰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참신한 작가와 함께 성장해가는 갤러리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경쟁력은 ‘부티크’가 아니라 ‘유니크’에서 나온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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