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고조되면서 엔화 가치가 다시 뛰고 있다. 여기에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조기 긴축 종료 기대감까지 더해지자 안전한 투자처로서 엔화가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지난해 3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던 엔화 가치가 올해는 연말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됐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은 수출과 소비의 동반 부진 속에 원화 가치 약세가 지속될 경우 외국인 자본 이탈을 부채질할 수 있다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관련 기사 3면
6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엔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7.15원 오른 1003.61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엔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3월 25일(1000.21원) 이후 1년 만이다. 최근 엔화 가치가 가파르게 오른 데는 미국과 스위스에서 잇따라 불거진 은행 위기의 영향이 컸다. 달러 대비 엔화 가치는 지난달에만 3.8%나 상승해 스위스프랑(2.8%)과 영국 파운드(2.4%) 등을 제쳤다.
미국이 긴축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것이라는 기대감도 엔화 강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일본은 세계적인 초긴축 국면에서도 마이너스 금리를 고집해 엔화 가치는 지난해 32년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9일 취임하는 우에다 가즈오 신임 일본은행(BOJ) 총재가 ‘피벗(통화정책 방향 전환)’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다.
일본이 관광객 유입에 따른 서비스수지 개선에 힘입어 성장 반등을 꾀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수출과 소비 부진으로 저성장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일본이 1.8%의 성장률을 달성할 것으로 예상한 반면 한국은 1.7%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성장률이 일본에 뒤처지는 것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이다. 강삼모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만 해도 엔화가 강세면 무역수지에 도움이 됐지만 지금의 (엔화 대비) 원화 약세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 약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커 반길 수 없다”며 “더욱이 중국 경제의 더딘 회복으로 당분간 수출 호조를 기대하기 어려워 원화 약세가 이어질 경우 외국인 자본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