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조카가 이런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그는 서울의 한 사립대 이공계 학생으로 군 현역 복무를 마친 뒤 올해 복학했다. “학과 건물이 허름한 것은 참겠는데 연구실의 낡은 장비를 보면 절로 한숨이 나옵니다” “군대를 다녀오면 교육 환경이 조금이라도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열악한 우리 대학 교육 현장의 현실은 수치로 확인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전국 4년제 사립대의 실험실습비 예산은 늘기는커녕 쪼그라들었다. 2011년 2144억 원에서 2021년에는 1501억 원으로 10년 사이에 30%나 줄었다. 이공계 연구실에 20년이 넘은 실험 장비가 가득하고 컴퓨터나 빔프로젝터 같은 시청각 장비를 수년째 그대로 사용하는 대학이 수두룩하다고 한다.
등록금이 동결된 상황에서 인건비 등 비용이 득달같이 오르면서 대학의 재정 상태는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2021년에 전국 156개 사립대는 1555억 원의 손실을 냈다. 2017년부터 5년 연속 적자 행진이다. 대학의 재정위기는 교육 부실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 대학들은 적자를 조금이라도 덜 내기 위해 낡거나 고장 난 시설·실험 장비의 교체를 주저한다. 지금 대학의 현실에서 혁신이나 투자를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수업과 연구가 진행되고 미래 핵심 인재를 키울 수 있겠는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평가에서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학교육 경쟁력은 63개국 가운데 46위로 하위권이었다. 한국의 국가 경쟁력이 27위였던 점을 감안하면 대학교육 경쟁력이 국가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대학들의 재정위기가 국가의 미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대학은 재정난에 허덕이고 있는데 지방 교육청은 완전 딴 세상이다. 유초중등 교육 예산으로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교육교부금은 매년 국민들이 납부하는 내국세수의 20.79%에 교육세 세수 일부를 더해 만들어진다. 세수 증가에 따라 교육교부금은 늘어나는 반면 학령인구는 급감하면서 유초중등 교육 재원은 남아돌고 있다. 초중고교 학생 수는 2000년 795만 명에서 지난해 527만 명으로 급감했다. 그런데도 교육교부금은 해마다 늘어나 올해 76조 원에 육박했고 2027년에는 100조 원을 돌파할 것이라고 한다.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교육 재정에서 남는 돈으로 적립한 기금의 규모는 무려 22조 원에 달했다.
이렇게 여윳돈이 넘치다 보니 지방 교육청은 쓸 곳을 억지로 만들고 있다. 일부 교육청은 초등학생에게 매달 10만 원씩 예체능 교육비를 지급하고 중1 학생 전원에게 태블릿PC를 나눠줬다. 대북 지원 등 엉뚱한 곳에 쓰는 경우도 있었다. 국가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위해서도 교육교부금 수술이 시급하다. 감사원도 2020년 지방교육재정 관련 감사보고서에서 “학령인구는 급감하는데 지방교육재정 규모는 계속 증가하면서 국가 자원 배분과 지방 교육 재정 운영의 비효율 우려가 커졌다”고 지적했다. 올해 세수가 줄어들면서 1분기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54조 원에 달하는 등 나라 재정 형편이 좋지 않다. 나라 살림은 빠듯해지는데 교육청 곳간은 넘쳐나는 상황은 정상이 아니다.
교육교부금법은 지금보다 경제 규모가 작고 출산율은 높았던 1971년 제정됐다. 시대 변화에 맞게 수술할 때가 됐다. 현 정부 들어 교부금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은 다행이다. 국회는 대학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교육교부금 가운데 일부를 떼어내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를 신설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고특회계는 3년 한시 조건이어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교육교부금이 대학에도 배분돼 연구개발 지원과 인재양성에 쓰일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등 제도 전반을 수술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내국세 자동 배정 비율 조정 등을 통해 국가 전체 재정 운용의 틀 속에서 교육 재원 배분을 결정하는 구조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