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의 ‘미스터 에브리씽(Mr. Everything)’으로 불리는 남자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이자 사실상 이 국가를 통치하는 모하메드 빈 살만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을 방문해 사우디 내 첨단도시 ‘네옴(NEOM)시티’ 건설을 매개로 우리 기업들을 들뜨게 하더니 최근에는 미국 미국프로골프(PGA)투어를 합병하면서 지속적으로 전 세계 화제의 인물이 되고 있다.
새로 번역 출간된 ‘빈 살만의 두 얼굴(원제 Blood and oil - Mohammed Bin Salman’s ruthless quest for global power)’은 이러한 빈 살만에 대해 최초로 종합 정리돼 출간된 책이다. 저자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기자들로 중동과 금융문제에 대한 전문가들이다. 저자들이 정리한 빈 살만은 보수적인 사우디를 현대화하려는 개혁가임과 동시에 수구적인 권력을 지키려는 잔혹한 독재자다. 저자가 말하는 피(blood)는 빈 살만이 휘두르는 국내외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고 원유(oil)는 사우디 경제·사회의 자산이자 벗어나야 하는 굴레다.
1985년생으로 올해 겨우 38세인 빈 살만은 어린 시절 맥도날드를 너무 좋아해 체형은 비만했고 게임에 빠져 공부에는 무관심해 아버지를 실망시켰다. 하지만 1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다른 형제들처럼 해외 유학을 가는 대신 수도 리야드 지사였던 아버지 곁에 머물면서 권력에 대한 속성을 파악해갔다.
지난 2015년 아버지 살만 빈 압둘 아지즈가 국왕이 되면서 그의 시대가 열렸다. 그는 권력투쟁 끝에 수십명의 형제·사촌들을 모두 제치고 왕위 승계 서열 1위인 왕세자가 됐다. 현재 87세 고령인 부친을 대신해 국정을 책임지고 있다.
왕위 계승 규정이 애매모호한 사우디 왕가에서 누군가가 왕위를 계승하고 또 권력을 강화하려면 그만큼 다른 이들과 경쟁이 필요했다. 빈 살만은 특히 ‘왕족 부패 척결’이라는 이름 아래 대숙청을 했다.
전근대적 사우디 왕조 체제의 유지를 위해 국민의 저항까지 틀어막는 잔혹함을 보였다. 빈 살만의 치하에서 사우디는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전체주의 국가가 됐다. 2018년 미국에서 활동하는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는 대표적인 사례다.
그렇다고 그를 비난만 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그는 석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사우디 경제를 변화시키기 위해 기존에 없던 노력을 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 투자하고 국내 자체산업 육성에도 나섰다. 여성 인권 등 사회를 짓눌러온 이슬람 율법을 완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빈 살만은 집권 직후 경제 개혁 방안을 발표했다. 2016년 사우디 경제가 석유 의존에서 벗어나는 ‘비전 2030’과 이듬해 ‘네옴시티’라고 불리는 5000억 달러 규모의 거대 신도시 계획이다.
다만 천하의 ‘미스터 에브리씽’이라도 안되는 일은 있는 법이다. 글로벌 기업이나 해외 국가들이 노리는 것은 빈 살만이 쥐고 흔드는 오일머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그가 투자 혹은 지원 해주기를 바란다. 반면 빈 살만은 해외기업들이 오히려 사우디로 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들어와 이 나라 경제를 부양하기를 희망한다.
저자가 보기에는 이런 모순은 해결되기가 쉽지 않다. 사우디의 경직된 사회체제와 규제는 해외 기업들의 투자를 가로막는다. 앞서 직전 국왕 시대의 주력 사업이었던 ‘압둘라국왕 경제도시’ 프로그램이 침몰한 마당에 ‘네옴시티’라고 성공을 보장할 수 없다.
최대 우방이었던 미국과의 관계도 예전같지는 않다. 미국은 사우디가 고분고분하게 글로벌 시장에 충분한 석유를 공급해주기만 하면 만족한다. 반면 빈 살만은 더이상 미국의 ‘물주’가 되지 않겠다는 태도다.
우리가 빈 살만에 대해 공부해야 하는 것은 그의 시대가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점에서다. 그는 여전히 30대 청년이다. 저자는 “권력 투쟁의 경쟁자가 없는 빈 살만의 시대는 30년 이상 계속 된다. 미스터 에브리씽의 시대는 겨우 시작됐을 뿐”이라고 말한다.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