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 최근 미국과 외교관계를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하는 등 적극 행보를 보이는 와중에 비밀리에 러시아산 무기 수입도 추진 중이라고 뉴욕타임스(NYT)가 10일 보도했다.
NYT는 올 3월 작성된 베트남 정부 내부 문서를 인용해 베트남이 러시아와 향후 20년간 80억달러(약 10조6960억 원) 규모의 무기 구매 계약을 추진 중이라며 이같이 전했다. NYT는 이 문서에 베트남 재무부 차관의 서명이 포함됐으며, 베트남 전현직 관리들도 이 내용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문서 내용을 보면, 베트남은 자국 군대 현대화를 위해 시베리아에 위치한 러시아-베트남 합작 석유 업체를 통해 비용을 지불하는 방안을 러시아에 제안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베트남은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로부터 모든 면에서 금수 조치를 당하고 있다”면서 ‘러시아와 전략적 신뢰를 강화하는’ 새 무기 거래를 협상 중이라는 언급을 남겼다. 그러면서 “베트남은 러시아를 여전히 국방·안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트남과 미국 간 관계는 최근 들어 부쩍 가까워지는 추세다. 특히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데 베트남의 역할을 크게 신경 쓰고 있으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직후 베트남을 찾을 정도다. 하지만 베트남이 러시아와 추진 중인 무기 거래는 미국의 대러 제재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베트남은 한때 세계 10위 안에 드는 무기 수입국이었으며, 오랜 기간에 걸쳐 러시아제 무기에 의존해 온 게 사실이다.
이번 무기 거래는 중국에 대항해 군사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풀이된다. NYT는 “베트남이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추진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면서도 “타국에 ‘우리 아니면 남’이라는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하는 미국 대외정책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지점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싱가포르 싱크탱크인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이언 스토리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베트남에 대해 비현실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베트남과 중국 간 관계의 민감성, 베트남과 러시아 간 깊은 관계를 미국이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를 오해한다면 미국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베트남은 미국 외에 다른 국가들과도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유연성을 보이는 이른바 ‘대나무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알렉산더 부빙 하와이 아태안보센터 연구원은 “베트남이 미국과 관계를 강화하는 만큼 중국, 러시아에도 자신들을 버리지 않음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며 “그들은 섬세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NYT는 베트남 정부 안팎에서는 바이든 대통령 외에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연내 베트남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