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2000명 넘게 숨졌는데…모로코 국왕은 '파리 대저택'에 있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사진=로이터 연합뉴스




북아프리카 모로코에 규모 6.8의 강진이 덮쳐 수천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을 때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국왕이 부재해 정부 대응이 늦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11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몽드에 따르면 지난 8일 밤 모로코에 강진이 났을 때 국왕 모하메드 6세는 모로코가 아닌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그는 이달 1일 건강상 이유로 파리에 도착해 에펠탑 근처에 소유한 1600㎡ 저택에 머물고 있었다.

모하메드 6세는 폐나 기관지 등 호흡 기관에 생기는 염증 질환인 사르코이드증을 앓고 있어, 2018년 파리에서 수술받은 후 정기적으로 프랑스를 방문한다.

모하메드 6세가 지진 소식을 듣고 파리를 떠난 건 이튿날인 9일 아침이다.

이후 모로코 정부는 국왕이 수도 라바트에서 정치·군사 고위 인사들과 함께 재난 대응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을 촬영해 언론에 공개했다. 이후 모로코 텔레비전에서는 내내 이 모습만 반복 재생됐다. 국왕이 공식적으로 재난에 대처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다.



모로코는 국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앙 집권 국가이기에 국왕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총리조차 지진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었다고 르몽드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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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파괴된 수십 개의 마을에 군대가 파견됐음에도 구체적인 규모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마라케시 주민들이 8일 밤부터 여진을 두려워하며 노숙하는 상황에서도 마라케시의 시장이나 지방 의원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치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오마르 브룩시는 르몽드에 "어떤 공무원도 주권자에 앞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다. 이것은 불문율"이라고 말했다.

모하메드 6세가 국가에 큰 재난이 닥쳤을 때 뒷북 대응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 동북부 알호세이마에서 지진이 나 6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을 때도 공무원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고, 이재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당시 국왕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재난 발생 나흘 후 피해 지역에 나타나 왕실 텐트를 치고 며칠 밤을 현장에서 보냈다.

르몽드는 모로코 내 모든 것의 중심에 '국왕'이 있지만, 정작 그는 통치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다고 보도했다.

그가 모로코를 오랫동안 떠나 프랑스나 가봉, 세이셸에서 시간을 보낸다는 보도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해엔 프랑스 우아즈 지역에 그의 부친인 하산 2세가 1972년 구입한 성에서 몇 주를 보내고 돌아가기도 했다.

모하메드 6세는 이런 자신의 통치 스타일과 사생활에 대한 내부의 불만을 의식한 듯 올해 들어선 모로코에 주로 머물러 왔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부재중 지진이 발생하자 서둘러 프랑스에서 귀국한 것이다.

르몽드는 "국왕은 이 비극에 모로코 국민과 함께한다는 걸, 왕이 그들의 수호자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라바트로 돌아와야 했다"며 "지진으로 드러난 문제점들을 감추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원치 않게 물려받은 특별한 역할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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