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관점] 알타시아 구상에 숙제 산적…IPEF 등 다양한 전략으로 성장 모멘텀을

◆알타시아의 허와 실

알타시아, 국가별 이해 조정·구심력 확보 등 난관 많아

중국 배제한 역내 공급망은 IPEF, 미국 주도로 협상 중

“낮은 수준 통합 그쳐 중국 조기 대체 어려워” 한계에도

탈중국 현상 계기로 ‘빈 자리’ 차지 위해 전방위 지원을


지난달 18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정상회의는 장관급 회의 정례화 등으로 3국 공조를 격상하고 제도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성과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협력 의제를 기존의 외교·안보·군사 등 개별 현안 중심에서 경제·기술 등으로까지 포괄적으로 확대했다는 점이다. 또 세 정상은 동북아시아 지역에 머물던 협력의 범위를 인도태평양 지역까지 넓히기로 합의했다. 3국이 인도태평양 차원의 경제협력을 추가적인 연결 고리로 삼아 연대를 강화하는 동시에 탈(脫)중국 전략에 속도를 내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여파로 중국을 대신할 지역이나 국가를 찾으려는 시도가 활발해지면서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이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영국의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제시한 ‘알타시아(Altasia)’도 그중 하나다. ‘대안(Alternative)’과 ‘아시아(Asia)’를 합성해 만든 신조어로 중국을 대체할 수 있는 아시아 지역 국가라는 뜻이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등 아시아 주요 14개국은 각각 기술력과 자본력·노동력·천연자원 등에서 강점을 지니고 있어 한데 뭉치면 중국을 대신할 공급망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하지만 알타시아 구상이 실제로 중국을 대체하는 독자적인 공급망과 시장을 구축하면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알타시아 비전을 현실화하려면 각국의 이해관계 조정 등 해결해야 할 과제와 넘어야 할 장애물들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생산 기지를 중국에서 다른 나라로 이전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중국 경제가 위축된 데다 미국의 대(對)중국 첨단 기술·장비 수출 금지 조치 등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면서 ‘메이드 인 차이나’ 리스크가 커졌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기술이전 압박, 인건비 상승, ‘반(反)간첩법’ 시행에 따른 법적 처벌 위험 등도 글로벌 기업의 탈중국을 부채질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부터 최신 휴대폰인 아이폰14를 인도에서 생산하고 있다. 애플의 최대 협력사인 대만 폭스콘은 2024년까지 인도의 아이폰 생산량을 연간 2000만 대로 늘리기로 했다. 구글은 미국 정부가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자 일부 하드웨어 생산 기지를 중국에서 대만·말레이시아로 이전했다. 닌텐도·혼다·마쓰다 등 일본 기업들도 중국 생산 라인을 해외로 옮겼거나 이전을 검토 중이다. 미일 동맹 강화로 중국 의존도가 낮아지면서 올해 상반기 일본의 대중 수출 비중은 17.2%로 전년 동기의 19.4%보다 감소했다.

한국 기업들도 사업의 중심을 중국에서 베트남·인도 등으로 점차 옮겨가는 추세다.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해 1~7월 19.6%로 전년 동기의 22.8%에서 3.2%포인트 줄었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국내 9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주요 비즈니스 대상국(3개국 복수 응답)’은 미국·중국·일본·베트남·독일·인도·러시아 등의 순이었다. 반면 ‘향후 중점 비즈니스 대상국’으로는 미국·베트남·인도·중국·일본·독일·인도네시아 등의 순으로 꼽았다. 중국이 4위로 밀리고 베트남과 인도가 각각 2·3위로 올라선 것이다.





◇14개국 ‘알타시아’ 구상 대체 공급망으로 떠오르지만…


이처럼 중국 의존도가 감소하고 인도와 동남아 국가 내 제조업 기지가 늘면서 국내에서도 알타시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알타시아는 구체적으로 한국·일본·대만 등이 기술력 부문에서 중국을 대체하고 △싱가포르가 금융·물류를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브루나이가 자원을 △인도·베트남·태국이 투자 대상을 △필리핀·방글라데시·라오스·캄보디아가 노동력을 담당하는 구조다.

이론적으로는 14개국이 힘을 합치면 중국을 대신할 만한 공급망을 만들 수 있다. 이 국가들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기준 14조 1079억 달러로 중국의 18조 1000억 달러에 육박한다. 인구는 24억 1051만 명으로 중국의 14억 4847만 명을 웃돈다. 고등교육을 받은 고급 인력도 1억 5500만 명으로 중국의 1억 4500만 명보다 더 많다. 인도·동남아 국가들의 제조업 임금은 시간당 평균 2~3달러로 8.3달러인 중국에 비해 경쟁력이 높다.

알타시아 국가 중 기술력과 자본력, 안정적인 인프라 등을 갖춘 나라는 한국·일본·싱가포르 등 소수에 불과하다. 알타시아 국가들의 공급망 통합만 이뤄진다면 저성장 국면에 들어간 한국에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리는 셈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정부가 경제 외교 강화, 대중 교역 전략 재구축, 기업 투자 걸림돌 제거 등을 통해 한국이 매력적인 공급망 대체국으로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개별 국가들의 이해관계가 다른 데다 알타시아 통합을 주도할 만한 국가마저 없다는 점이다. 노동력과 기술·자원 등 개별 국가의 장점을 조합해 중국을 대체할 공급망을 만드는 구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구심력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이 이사는 “중국만큼 완결된 공급망을 가진 국가를 찾기는 어렵다”며 “그동안 장점이 있는데도 관심이 적었던 몇몇 개별 국가들과 교류 협력을 확대하고 시장을 다변화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IPEF도 공급망 다변화 수준 그칠 듯

현재 중국을 대신할 공급망으로 논의가 진전 중인 다자간 경제협력체는 알타시아가 아니라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주도로 지난해 5월 공식 출범했다. 미국과 한국·일본·호주·인도·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싱가포르·브루나이·뉴질랜드·피지 등 14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알타시아와 참여국이 겹치지만 미국이 경제 안보 전략 차원에서 중국을 배제한 경제 공동체 구축을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크다. 2020년 기준 IPEF 참여국들의 GDP와 인구가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40.9%, 32%에 이른다.

IPEF의 경제협력 분야는 △무역 △공급망 △청정에너지·탈탄소화·인프라 △조세 협력과 반부패 등 크게 네 가지다. 공급망 분야는 이미 5월 회원국들이 합의해 협정문 초안을 공개했다. 나머지 분야는 올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협정을 체결하는 것을 목표로 협상이 진행 중이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IPEF가 출범하면 역내 시장에서 한국이 중국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정부 정책이 뒷받침된다면 한국의 GDP가 최대 2.1% 정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도 “강제력이 없다는 IPEF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IPEF 출범은 디지털 서비스 무역 선점과 공급망 안정화·다변화를 통해 기업의 중장기 투자를 이끌어내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며 “공적개발원조(ODA) 등을 활용해 IPEF ‘룰 메이커’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IPEF 역시 중국 대체가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의 다변화 정도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처럼 생산 거점과 기술, 인프라, 물류 네트워크에다 거대 소비 시장까지 갖춘 공급망을 조기에 구축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전략적 필수재의 안정적인 공급 등 경제 안보 측면에서 IPEF를 활용하려는 반면 개발도상국들은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제조업 활성화와 고용 증대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

또 개도국들은 IPEF 출범으로 미국·한국 등 일부 선진국만 혜택을 누릴 것으로 우려한다. 경제 의존도가 높은 중국과 갈등을 빚는 사태를 원하지 않고 조세 회피 방지, 반부패 등의 조항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고 있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통상전략실장은 “미국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지만 타결되더라도 낮은 수준이 될 것”이라며 “가령 무역 부문의 경우 국가 간 관세 인하나 비관세장벽 철폐 등 추상적인 규범 합의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탈중국 대안으로 ‘차이나+1’·이원화 전략 주목


중국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일까.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은 ‘차이나 플러스 원(China plus one)’이나 ‘차이나 플러스 매니(many)’이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다’는 주식 투자 격언처럼 제조 기지라는 중국의 위상을 어느 정도 유지하되 거점을 점진적으로 분산시키는 전략이다. 국가별 전략을 보더라도 중국과 비슷한 규모의 노동력과 내수 시장을 가진 인도만 ‘포스트 차이나’를 노리고 있을 뿐 베트남·태국·말레이시아 등 다수의 국가들은 ‘플러스 원’ 자리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중국이 최대 교역국인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과 비(非)중국 시장에 각각 맞는 공급망 체계를 구축하는 ‘이원화 전략’을 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은 단일 최대 시장이자 제조 기지로서의 강점을 가진 만큼 중국 시장 자체를 포기하기보다는 관련 사업과 공급망을 세계 시장으로부터 분리하는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실장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작업이 급진적으로 이뤄지면 경제적 피해가 커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점진적이면서도 꾸준하게 추진하면서 기업이 대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 등 자유시장 경제와 중국 중심의 국가자본주의 간의 대결 양상이 가시화하면서 정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지적이 많다. 역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핵심적 역할을 맡게 될 가능성이 큰 만큼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실장은 “서방 기업들의 탈중국 현상이 심화하고 중국의 수출이 줄어들면 빈자리를 놓고 한국과 유럽·일본 등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며 “정부가 세제 지원 확대, 리쇼어링(본국 회귀) 기업 지원, 노동 유연성 강화 등을 통해 성장 모멘텀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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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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