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품 제조·품질관리 허위 기록에 따른 GMP(제조·품질관리기준) 적합 판정 취소 첫 적용 여부를 두고 정부가 고심에 빠졌다. GMP 관련 중대한 위반행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가 자칫 중소제약사들을 존폐 위기로 내모는 규제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점에서 적용 범위를 놓고 셈법이 복잡해진 모양새다.
14일 정부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한국휴텍스제약 향남 공장의 GMP 적합판정서 취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GMP 적합 판정을 취소하는 첫 사례로 지목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범위까지 적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며 "제도 취지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식약처는 지난 7월 중순께 '레큐틴정' 등 휴텍스제약이 제조판매하는 6개 품목의 제조·판매 중지를 명령하고 2021년 11월부터 제조돼 사용기한이 남아있는 모든 제품을 회수 조치했다. 휴텍스제약의 GMP 준수 여부 등에 대한 특별기획 점검을 실시한 결과, 해당 6개 제품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첨가제를 임의 증량 또는 감량해 허가사항과 다르게 제조하고 제조기록서를 거짓 작성한 사실이 적발됐다는 이유다. GMP 적합판정서는 지난 2014년부터 시행된 의약품 품질관리 제도다. 3년마다 식약처가 정한 시설 기준을 통과해야 원료 및 완제의약품 생산을 지속할 수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변수는 작년 12월 시행된 'GMP 적합 판정 취소 제도'다. 식약처는 바이넥스, 비보존제약, 종근당, 한올바이오파마 등 의약품 임의제조 등 GMP 위반 사례가 잇따르자 GMP 적합 판정을 거짓 또는 부정하게 받거나 반복적으로 의약품 제조·품질관리에 관한 기록을 거짓으로 작성해 판매한 사실이 적발된 경우 GMP 적합 판정을 취소하는 일명 'GMP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했다. 제도 시행 이후 첫 위반 사례가 나오면서 적용 여부에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휴텍스제약은 2021년 기준 의약품 생산액 2949억 원으로 상위 20위권에 드는 중견업체다. 다만 이번에 적발된 6개 제품의 2021년 생산실적은 총 107억 원 상당으로 회사 전체 매출(2742억 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처분 대상이 이들 제품으로 한정될 경우 치명적 손실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향남 공장의 GMP 적합 판정 자체가 취소될 경우 위수탁 계약을 맺고 제조공급 중인 의약품까지 확대 적용되면서 파장이 일파만파 커질 수 있다.
식약처 고위직 출신 제약업계 관계자는 "GMP 적합판정서는 자사제조 품목 기준으로 발급하는 게 원칙"이라며 "해당 시설에서 제조되는 모든 제형군으로 확대 해석될 경우 사업 자체를 접어야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휴텍스제약은 최근 국내 4대 로펌 중 한 곳과 계약을 맺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벌어질 경우 현집행정지 가처분 신청과 본안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약사법 개정 이후 첫 적발 사례라는 점에서 업계 내 의견은 분분하다. 당초 식약처는 "해당 6개 품목 외에도 시험성적서·출하승인서 등을 작성하지 않는 등 GMP 기준을 위반한 품목이 확인됐다"며 "약사법 위반에 따른 행정처분 등 필요한 조치를 신속히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두달 가까이 후속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제약업계도 식약처 조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위수탁 거래가 활발한 중소제약사들은 수탁사 잘못으로 불똥이 뛸까 긴장하는 분위기다. 한 중소제약사 관계자는 "의약품 품질 부적합 판정을 받아도 해당 제품 제조중지가 1~3개월 수준이다. 안전성 문제를 일으킨 것도 아닌데 일부 품목의 GMP 위반을 전 제품군으로 확대 해석하는 건 과잉처벌"이라며 "휴텍스제약 사례가 어떻게 일단락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