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안전망인 실업급여(구직급여)제도를 ‘놀고먹는’ 용도로 악용하는 사례가 만연한 가운데 반복·부정 수급 등 폐해가 내국인은 물론 이주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일상화된 것으로 파악됐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혈세 누수를 막기 위해서는 허위 수급자에 대한 제재·처벌 강화 등 강경한 대책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고용노동부에서 제출받은 실업급여 부정 수급 적발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4년 반 동안 실업급여 부정 수급 건수는 총 10만 7525건으로 집계됐다. 금액으로는 총 1129억 원에 이른다. 고용보험법은 부정 수급한 실업급여 전액을 반환하고 최대 5배의 금액을 추가로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 기간 당국이 환수하지 못한 금액은 382억 원에 달했다.
제조업에서 이주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외국인 부정 수급자도 적지 않다. 최근 4년 반 동안 적발된 외국인 부정 수급 건수는 961건, 수급액은 9억 68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취업을 하고서도 신고하지 않거나 피보험 자격 허위 신고, 타인이 대리로 실업 인정을 신청하는 등 내국인 못지않은 다양한 수법으로 실업급여를 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실업급여 부정 수급 문제는 과거부터 개선이 시급한 현안으로 꼽혀왔지만 실질적인 대책 마련은 요원한 실정이라 고질적인 사회문제로 비화된 상태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실업급여의 부정 수급은 재정 운용의 비효율성 증가뿐만 아니라 수급자 간 형평성 저해, 그리고 재정에 대한 국민 신뢰 하락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며 “부정 수급이 근절되지 않을 경우 국가 사업의 도덕적 해이를 조장해 기금 낭비를 초래할 수 있으며 정작 필요한 경우에 지원을 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업급여를 거짓으로 타가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대다수인 만큼 처벌 기준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고용보험법은 부정한 방법으로 실업급여를 받았을 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사업주와 공모했을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한다. 다만 이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더라도 대부분 벌금형 판결을 받는 게 부지기수다.
국회에서는 실업급여 부정 수급자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는 법안들이 계류 중이다.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용보험법 개정안은 실업급여를 부정한 방법으로 타낼 경우 그 액수의 ‘3배 이상’으로 추가 징수액의 하한을 규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행법은 ‘부정 수급액의 최대 5배 이하’로 상한만 두고 있다. 같은 당 홍석준 의원은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한 피보험 단위 기간의 요건을 기존 ‘180일’에서 10개월로 연장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도의 허점을 악용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는 일명 ‘베짱이족’을 막는 취지다.
노동 사건 전문가인 류재율 법무법인 중심 변호사는 “실업급여 부정 수급은 경미한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공공의 기금을 착복하는 범죄 특성상 비난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형량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며 “또 사업주가 부정 수급을 하도록 근로자와 협의했을 경우에는 현행법과 같이 단순히 방조범이 아니라 공동정범으로서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업급여 부정 수급을 근절하기 위한 입법적 조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야당은 달갑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어 개선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현재 정부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제도 개선안은 정당하게 실업급여를 받는 노동자들을 억압한다는 게 더불어민주당 측의 입장이다.
민주당 환경노동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실업급여제도 개편 자체가 지금 필요한 것인지 좀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실업급여 하한액 폐지는 결국 취약 계층 노동자들의 생존의 문제에 접근하게 될텐데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얘기하는 약자 복지에 맞는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보장성을 높이기 위해 장기적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