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가 교사의 생활지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속적으로 담임 교체를 요구하는 행위는 교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고 등 교권 침해 사례가 급증하는 가운데 법원이 학부모들의 무분별한 악성 민원 등 교권 침해 행위에 제동을 건 셈이다. 대법원이 정당한 교사의 생활지도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법리를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교원단체들은 이번 판결이 교권 회복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14일 학부모 A 씨가 초등학교 교장을 상대로 낸 교권보호위원회 조치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2021년 4월 초등학교 교사 B 씨는 수업 중 물병으로 소리를 내며 장난을 치는 학생의 이름을 칠판 레드카드 옆에 붙이고 방과 후 10여 분간 청소를 시켰다. 해당 학생의 부모인 A 씨는 아동학대라며 학교 측에 담임 교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교육 당국에 민원을 제기했고 장기간 학생의 등교를 거부했다.
이후에도 계속된 A 씨의 민원에 B 씨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교육 당국에 교육활동 침해 신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학교장은 교권보호위원회를 열고 A 씨의 행위를 교육활동 침해 행위인 ‘반복적 부당한 간섭’으로 보고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A 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A 씨의 행위를 교권 침해 행위라고 본 반면 2심은 A 씨의 행위를 교육활동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레드카드 벌점제는 교사가 훈육에 따르지 않는 아동의 이름을 공개해 창피를 줌으로써 따돌림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강제로 청소노동까지 부과해 정당한 교육활동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레드카드 제도 등 B 교사의 직무수행은 정당한 교육활동에 해당한다며 반대로 A 씨의 행위가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해당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교사가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이 존재하는 영역인 학생에 대한 교육과정에서 한 판단과 교육활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존중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부모 등 보호자는 자녀의 교육에 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으나 이러한 의견 제시도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며 교원의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담임 교체 요구에 대해서도 “설령 담임교사의 교육 방법에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교육 방법의 변경 등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면 먼저 그 방안을 시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학부모가 정당한 사유 및 절차에 따르지 않은 채 반복적으로 담임 교체를 요구하는 것은 담임교사로서 온전한 직무수행을 기대할 수 없는 비상적인 상황에 한해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교원의 전문성과 교권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보장되는 것으로 정당한 자격을 갖춘 교사의 전문적이고 광범위한 재량에 따른 판단과 교육활동에 대해서는 이를 침해하거나 부당하게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최초로 판시한 사안”이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교원단체는 일제히 이번 판결에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가 반드시 법으로 보호 받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며 “무분별한 담임교체 요구는 교권 침해를 넘어 아이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행위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교사노조연맹도 “학부모에 의한 교권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가 법적으로 인정됐다”며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학부모의 민원에 의해 학교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담임 교체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