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틴 리는 신비로움을 갖고 있다. 그가 아티스트가 되기 전 권투선수였던 것처럼 말이다.”
미술계의 이단아 오스틴 리에 대한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의 평가다. 권투선수 출신 작가라는 생소한 이력처럼 그의 작품은 평론가들에게도 낯선 게 사실. 그의 작품 제작 과정을 들여다보면 더욱 궁금증은 커진다. 그는 디지털 드로잉을 활용해 먼저 이미지를 구상한 후 디지털 이미지를 캔버스에 에어 브러시로 그리거나 3D프린터를 이용해 조각으로 형상화한다. 예술은 감성의 영역인데 공장처럼 수 차례 작품을 찍어내는 방식이 과연 관객의 공감대를 살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은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일거에 해소된다. 디지털 이미지를 그대로 현실에 옮겨 놓은 회화와 조각은 기쁨, 슬픔, 사랑, 불안 등 복잡 미묘한 감정을 지나치리만큼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국내 최초 오스틴 리 개인전 ‘패싱타임’은 지난 3년 여 간의 팬데믹 시대 우리가 경험한 복합적 감성을 성찰하는 특별한 전시로, 사회적 단절로 모든 것이 멈춘 시간 속에서 혼란을 겪는 인간 내면을 보여준다. 특히 조각 작품이 흥미롭다. 오스틴 리는 디지털 드로잉을 통해 가상과 현실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진행하는데 이 중 ‘워크’는 VR 헤드셋을 착용하고 무한하면서도 공허한 가상 공간에서 마치 물감 튜브를 짜듯 버튼을 누르고 기계를 움직여 형상을 창조했다. 작품만 가상에 있는 게 아니라 작가 자신도 가상의 공간에서 작품을 완성한 셈이다. 앤디 워홀이 실크스크린이라는 기법으로 회화의 새로운 장르를 보여줬듯 오스틴리는 디지털 기술에서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관람객은 전시에서 영상, 조형, 회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가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대형형색색의 무지개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미스터 오스틴’, 양 팔을 벌리고 바닥에 누워 물을 뿜어내고 있는 인물을 형상화 한 분수 작품 ‘파운틴’ 등은 모두 익살스럽게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전시는 26일부터 12월 3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