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전공한 작곡가가 미술관에 선다면 아마 대부분은 그가 전시회에 어울리는 음악을 제작하거나 선곡해 연주회를 여는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대중은 ‘음악은 무대에서, 그림은 미술관에서’라는 통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소리가 전시되는 현대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의 주인공은 20여 년간 전자음악과 라이브 공연을 통해 소리를 전시한 작곡가 타렉 아투이(43). 작가는 지난 4월 열린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2호 서인석 악기장과 협업한 ‘엘리멘탈 세트’를 선보여 주목 받은 레바논 출신의 현대미술 작가이면서 작곡가다.
작가는 2019년부터 한국의 전통 악기, 기물과 소리의 관계를 탐구해 왔다. 홀로 소리를 찾아다닌 게 아니다. 소리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기꺼이 도움을 청했다. 작가는 5년 여간 3대째 가업으로 우리 고유의 악기인 장구와 북을 만드는 일을 해 오고 있는 서인석 악기장과 30년 이상 전통 제작 방식을 고수하며 옹기를 제작하는 정희창 옹기장, 현대와 전통을 결합해 도자 작품을 제작하는 도예가 강지향 등과 교류하며 한국적 소리와 자신의 소리를 결합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국내 장인들과 함께 진행한 연구의 결과물이다. 전시의 주제는 ‘더 레인(The Rain)’으로 4대 원소 중 ‘물’에 집중한다. 이 전시에서 물은 소리를 만들고 전달하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전시가 열리는 아트선재센터 2층에는 약 40여 개의 악기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거나 천장에 메주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모든 악기는 물을 매개로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신기한 소리를 들려준다. 뚜껑을 열어 젖힌 북 위에 놓인 종이와 도자판은 북 소리를 ‘둥, 둥’이 아니라 ‘쨍, 쨍’으로 바꾸었다. 작가는 새로 제작한 악기들을 통해 옹기판을 날카로운 바늘로 긁고 그 소리를 전자 음향 장치로 증폭시켜 내는 소리, 북 속에 물을 한 바가지 담아두고 마이크를 넣어 진동에 의해 물이 흔들리는 소리 등 평소에는 결코 궁금하지 않았을 법한 사운드를 커다란 전시장 곳곳에서 들려준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하며 고개를 갸웃하고 들어선 관람객들은 어느새 악기 앞에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 작가의 소리 탐구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관람객은 1층에서 악기를 체험할 수 있다. 작가가 직접 제작한 기존 악기를 해체한 새로운 악기를 만져보고 두드려 보면서 소리를 경험하는 것. 아트선재센터는 이곳에서 어린이를 위한 워크숍 퍼포먼스도 진행할 예정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다양한 아이디어 실험에서 일상 속 오브제를 새롭게 발견하는 경험과 함께 여러 도구를 사용해 새로운 듣기 방식을 탐구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024년 1월 21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