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조선소 인력난에…조선 3사 中에 블록 하청준다 [biz-플러스]

[한화·삼성 이어 HD현대도 中서 블록 하청]

국내협력사선 제때 조달 어려워

"조선 생산능력 붕괴 시작" 지적

삼성중공업의 LNG운반선.삼성중공업의 LNG운반선.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조선업은 국산화 비중이 매우 높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이 만든 후판을 가공해 협력사들이 블록을 만들어 조선소에 납품한다. 선박 엔진도 HD현대중공업(329180)의 엔진사업부나 한화오션(042660)이 인수를 추진하는 HSD엔진 등 국내 업체들이 전부 제작한다. 크고 작은 기자재도 국내 협력사들이 만들어 공급한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에 들어가는 LNG 화물창 원천기술은 프랑스 기업이 가지고 있지만 제조는 100% 우리나라가 한다.

하지만 인구 감소에 따른 생산인력 부족, 조선소 내 여전한 저임금 구조 등으로 점점 국내 조선업도 생산의 일부를 점점 중국으로 위탁하는 일이 속속 벌어지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중국에서 상선용 블록을 들여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동안 상선용 블록은 전량 국내 협력사들이 제작해 HD현대중공업에 납품했다. 그러다 최근 조선 업계의 인력난이 심화하며 국내에서 블록을 제때 조달하기가 불가능해진 상황에 이르렀다. 중국 하청 업체를 통해 블록을 수입하는 한화오션·삼성중공업(010140)에 이어 HD현대중공업까지 중국 업체와 손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은 최근 국내에서 상선용 블록 수급이 어렵게 되자 중국 블록 제작사 몇 곳과 접촉하며 블록 물량 생산 일부를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1972년 창업 이후 50여 년간 국내 협력사를 통해서만 상선용 블록을 공급받았다.

유명 완구인 ‘레고’처럼 선박은 크고 작은 블록을 한데 붙여 만들어진다. 큰 블록은 하나에 400톤이나 되고,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경우 크고 작은 블록 300개가 들어간다. 통상 협력사가 블록을 만들어 조선소에 납품한다. 철판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용접 등 작업이 많아 노동력이 적지 않게 들어가는 핵심 공정이다. HD현대중공업이 우리나라 대신 중국 하청을 통해 블록을 받으면 한화오션·삼성중공업을 포함해 국내 조선 3사 모두가 중국에 블록 제작을 의존하게 되는 셈이다.

중국 하청을 쓰는 것은 조선소 내 인력난 때문이다. 지난해부터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수주가 늘어나며 조선업의 호황이 시작됐다. 이에 각 조선사와 협력사들은 임금을 올리며 인력을 대거 모집했다. 하지만 최근 주문을 받은 고가 선박의 수주 대금은 2~3년 뒤에나 들어오고 당장은 현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인건비 인상이 제한적이다. 또 지방 근무를 기피하는 현상도 겹쳐 인력 수급 문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비자 요건을 완화해 외국인 근로자들이 최근 대거 입국했지만 이들이 숙련공이 되려면 몇 년은 더 있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거제의 한 조선소 협력사 관계자는 “조선소의 인건비가 더 이상 오르기 어려운 게 현재의 상황”이라며 “결국 고육책 중 하나로 중국에서 블록을 들여와 비용 구조를 맞추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우리 조선업에 근무하는 원·하청 인력은 2014년만 해도 20만여 명에 달했다. 그랬던 것이 지난해 말 10만 명이 채 되지 않으며 반 토막이 났다. 조선업 호황기에 들어서며 수주 물량이 크게 늘었지만 인력은 10년 전에 비해 절반도 안 되는 것이다. 당장 상선용 블록을 만들 협력사 내 인력이 사라지면서 블록 납품마저 미뤄지고 있다.

HD한국조선해양(009540)은 이날 기준 총 155척(해양 설비 1기 포함)을 수주하며 올해 수주 목표 157억 4000만 달러(약 20조 7700억 원)의 138%를 잠정 달성했다.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도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가 선박 수주로 올해 하반기 이후 본격적인 흑자 전환을 이뤄냈다. 조선이 화려한 부활의 뱃고동을 울렸지만 그 이면을 보면 고민이 많다.

하청 인력난이다. 조선소들은 하청에서 블록을 공급 받아야 하는데 납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각 조선소들이 비상이 걸린 이유다. 울산의 한 협력사 관계자는 “블록 납품이 지연돼 한 번 공정이 밀리면 연쇄적으로 다른 공정도 지연된다”며 “이런 식으로 공정이 지연되기 시작하면 마무리 단계인 선박 인도를 적시에 못할 가능성이 급격하게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선박 블록은 용접 숙련공 등 많은 인원이 투입돼야 한다. 2015년 이후 조선업 침체 시기 숙련공들이 대거 조선소를 떠났고 삼성 반도체 공장이 건설되는 평택 등에 자리 잡고 돌아오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올해 외국인 인력 비자 요건을 완화해 상반기에만 조선소로 들어온 외국 인력(E7 비자로 입국한 숙련 노동자)은 1만 104명에 달한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들이 숙련공 중심으로 돌아가는 조선업 공정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수년이 더 걸린다는 문제가 있다.

조선소들도 인건비를 더 올리기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조선 3사들이 올해 흑자로 속속 전환되고 있지만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초기 투입 비용이 대거 들기 때문에 실제 가지고 있는 현금은 넉넉하지 않다. 한화오션은 올해 상반기 노사 임금 협상 타결을 하는 데만 200억 원을 지출했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이 있는 거제 지역 조선 협력사에 주는 기성금도 지난해 5% 안팎 인상에 이어 올해도 10% 가까운 인상 폭을 보였다. 울산 지역 협력사들이 받는 기성금도 비슷하게 올랐다. 그럼에도 조선소는 당장 현금 사정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HD현대중공업은 올 10월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2척 건조를 위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2000억 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올해 흑자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부채를 일으켜 선박을 건조해야 하는 상황이다.

조선 3사가 사실상 모두 중국산 블록을 들여오기 시작하면서 국내 조선업이 단순 조립 업체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만든 블록보다 저렴하고 무엇보다 인력난 걱정이 없어 납기를 제때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산 블록 수요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은 이미 중국과 블록 거래를 상당 기간 해왔다. 한화오션의 중국 내 블록 제작사인 한화오션산둥유한공사의 올 3분기 매출은 1560억 원으로 수주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2년 전 209억 원 대비 6.5배 폭증했다. 그만큼 중국에서 블록이 많이 생산돼 국내로 들어온다는 뜻이다. 삼성중공업도 올해 대만 해운사 에버그린으로부터 수주한 컨테이너선 일부 블록을 중국의 헝리중공업에 하청을 주기 시작했다. 헝리중공업이 만든 선체 블록을 삼성중공업의 거제조선소로 가져와 조립하는 것이다. 이미 삼성중공업은 중국 CIMC그룹 계열 조선소에 일감을 주는 등 10년 넘게 중국 하청을 통해 블록을 받아오고 있었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정이 늦어져 결국 선박 인도가 지연되면 막대한 배상금뿐 아니라 신뢰도가 추락할 수밖에 없다”며 “당장 외국인 근로자로도 생산이 안 되기 때문에 밀려 있는 수주를 쳐내기 위해 중국과 손을 잡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박호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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