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MBK는 왜?…국내 대기업으로부터 ‘독립 선언’ [김영필의 SIGNAL]

<7>한국 자본시장의 새 국면

조현범(왼쪽) 한국앤컴퍼니 회장과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 한국앤컴퍼니조현범(왼쪽) 한국앤컴퍼니 회장과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 한국앤컴퍼니




조현식 한국앤컴퍼니(000240) 고문이 사모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함께 시도한 한국앤컴퍼니 주식 공개매수가 실패했다. 당초 MBK는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의 장남인 조 고문과 차녀 조희원 씨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 약 29.54%를 바탕으로 20.35~27.32%를 추가로 사들일 계획이었다. 최소 물량(20.35%)을 확보하지 못하면 한 주도 사지 않는 조건이다. 하지만 사실상의 공개매수 마지막 날인 22일 최소 매입 물량을 채우지 못하면서 이들의 계획은 물거품이 됐다.



이 과정에서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은 일찌감치 조 명예회장의 지원사격을 받아 경영권을 더 견고하게 다졌다. 재계에서는 국내 최대 규모의 PE가 대기업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논란이 컸다. 특히 공개매수는 무산됐지만 MBK가 왜 뛰어들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MBK의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 시도와 그 의미를 다각도로 짚어본다.

MBK는 왜? 분석: ①미국식으로 접근했다 ②돈만 되면 다 한다 아쉬울 게 없다 ③결정적 한 방이 있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전날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가 불발된 뒤 MBK는 “유의미한 청약이 들어왔으나 목표치에 도달하지는 못했다”면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의미있는 시도였다”고 밝혔다.

재계 안팎에서는 처음부터 MBK가 왜 한국앤컴퍼니 ‘형제의 난’에 뛰어들었는지가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 PE는 평소에도 대기업과 교류하면서 친하게 지낸다. 대기업 계열사를 사들일 수도 있고, 자신이 갖고 있는 업체를 대기업에 팔 수도 있다. PE들은 대기업 계열사 지분 일부를 인수하거나 이들의 신규 투자에 동참하기도 한다. 대기업 비상장사는 기업공개(IPO)를 통해 짭짤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대기업과 각을 세워서는 어려운 일들이다.

사례는 차고 넘친다. 글렌우드PE는 지난 10월 SKC로부터 폴리우레탄(PU) 원료 사업을 하는 SK피유코어 지분 100%를 인수하기로 했다. 글렌우드는 CJ의 알짜 회사인 CJ올리브영 2대 주주(22.56%)에 올라 있다. SK그룹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아 문제가 된 SK스퀘어만 해도 국민연금과 새마을금고에 PE인 H&Q코리아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5000억 원을 투자했다. HMM(011200)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하림그룹도 자회사 팬오션과 사모펀드 JKL파트너스가 함께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PE인 한앤컴퍼니는 한국앤컴퍼니의 자회사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161390)와 함께 국내 최대 자동차 공조회사 한온시스템을 2015년 공동 인수한 바 있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던 MBK도 2016년 두산공작기계를 두산그룹으로부터 약 1조 원에 가져온 뒤 지난해 약 2조 4000억 원에 매각했다. 롯데그룹에서는 롯데카드를 인수해 보유 중이다. IB 업계의 고위관계자는 “PE들은 대기업들과 잘 지내야 한다. 특히 경영권 분쟁에는 뛰어들지 않는다”며 “상식적으로 이해가 어렵다”고 전했다.

MBK의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를 이끈 부재훈 부회장MBK의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를 이끈 부재훈 부회장


MBK가 조 고문과 손 잡고 현 조현범 한국앤컴퍼니 회장을 공격한 것은 이 같은 ‘PE-대기업 밀월관계’를 깨는 이례적인 일이다. 특히 조현범 회장 보유 지분만 42.03%로 40%가 넘는 상황에서의 적대적 M&A는 무모한 시도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최고라는 MBK는 반대 시도를 했다. 이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첫째, 부재훈 MBK 부회장을 주목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MBK는 부 부회장이 이끄는 스페셜시츄에이션펀드 2호를 통해 5200억 원을 공개매수에 쓰려고 했다. M&A 시장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부 부회장이 한국에 온 지 20년 정도가 됐지만 여전히 미국식 사고를 바탕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명분에 집착했을 수 있다”며 “한국은 미국과 상황이 달라 이번 건은 성공이 불가능했음에도 미국식 사고로 순진하게 접근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부 부회장은 미국 국적으로 아이비 리그인 펜실베이니아대를 졸업했다. 김병주 MBK 회장도 국적은 미국이다. MBK는 공개매수 마지막 말 내놓은 호소문에서도 “ESG 경영은 세계적인 흐름이며 거스를 수 없는 추세”라며 “한국앤컴퍼니는 부실한 지배구조와 대주주의 사법리스크로 인해 탄탄한 펀더멘털과 지속성장 가능성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임에도 기업가치가 하락했기에 공개매수를 통해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문제가 있는 기업을 바꾸겠다는 뚜렷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MBK 내부에서는 조현범 회장이 언론을 통해 공개매수에 관한 의견을 내놓는 것을 두고도 “횡령 배임 혐의자가 이럴 수 있느냐”는 인식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지배구조 개선·사법리스크 해소에 무게”…“MBK, 잃을 것 없어 꽃놀이 패 쥐어” 분석도


MBK와 손을 잡은 조 고문 측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앞서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과 조희원·조현식 고문 남매는 일반 주주들에게 “조현범 회장이 보석으로 풀려났다고 해서 사법 리스크가 없어진 것이 아니며 조현범의 사법 리스크는 한국앤컴퍼니의 기업가치와 주주가치를 훼손시킨 핵심요인”이라며 “대주주로서 그룹의 대표로서 적합하지 않은 도덕성을 보여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면서 “저희 삼남매는 한국앤컴퍼니 경영에는 직접 나서거나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기업지배구조를 바로 세우고 전문경영진 체제를 확립해 한국앤컴퍼니의 기업가치, 주주가치를 개선하고자 하는 MBK파트너스를 지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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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MBK는 어디까지나 PE다. 돈이 핵심 요인 중의 하나다. 사태 초기에는 MBK가 이번 사태에 뛰어들어도 잃을 게 하나도 없다는 분석이 있었다. 최소 물량에 미달하면 주식을 사주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자금이 들어가는 게 아니고 만약 공개매수에 성공해 경영권을 가져오게 되면 원매자 등장 시 조 고문과 조희원 씨 지분을 함께 묶어 팔 수 있는 드래그얼롱 조항도 확보했었다. 공개매수만 성공하면 글로벌 톱10 수준의 타이어 회사(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를 매각해 대규모 투자 수익을 노릴 수 있다. 이사회 구성에 있어서도 MBK에 더 우선권이 있다. 꽃놀이 패를 쥐었기 때문에 들어왔다는 게 두 번째 시각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꽃놀이 패인 것만은 아니라는 게 드러났다. 조현범 회장의 “사모펀드 사업은 기업인들이나 아니면 시장 참여자들과의 신뢰나 네트워킹을 기반으로 하는 비즈니스인데 지금 이 사태를 보고선 국내 기업 회장님들이 MBK를 앞으로 어떻게 보게 될 지 의문”이라는 주장이 아니더라도 대기업을 중심으로 MBK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크다. IB 업계의 고위관계자는 “대기업, 그중에서도 현직 오너가 경영을 하고 있는 곳들은 MBK가 자신들의 등에 칼을 꼽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평판이 깎이고 있는 셈이다.



LG그룹만 해도 구광모 회장을 상대로 구 회장의 어머니 김영식 여사와 여동생들인 첫째 딸 구연경(LG복지재단 대표), 둘째 딸 연수 씨가 상속회복청구 소송을 내 법적다툼을 벌이고 있다. SK그룹도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 사안이 그룹 승계구도에 미칠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MBK가 공개매수에 나선 이유, 세 번째 해석은 결정적인 한방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의 한 관계자는 “MBK의 명성이나 실력, 경험을 고려하면 아무 것도 없이 승산이 낮은 게임에 발을 들여놓았을 리 없다”면서 “조양래 명예회장의 건강 문제 같은 스모킹 건을 갖고 있는 것 아니냐”고 추측했다.

조양래 명예회장은 2020년 자신이 갖고 있던 한국앤컴퍼니 지분 23.59%를 조현범 회장에게 몰아줬다. 그 결과 후계구도가 조 회장으로 굳어졌다.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은 그해 6월 “조 명예회장이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이를 한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며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했다. 지난해 4월 1심은 조 씨의 청구를 기각했고 조 이사장 측은 이에 불복해 항고해 재판이 진행 중이다.

“대기업 돈 필요 없다 동등한 위치에서 상대”…“국내 자본시장 발전에 PE 목소리 커져”


만약 심판 결과가 뒤집힌다면 조 명예회장이 조현범 회장에게 지분을 넘긴 일 자체가 무효가 될 수도 있다. 23.59% 지분의 향방에 따라 경영권이 뒤바뀌므로 조현식 고문과 MBK파트너스가 이 부분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실제 내용에 따라서는 결정적 한방이 될 수 있다. MBK는 공개매수에 실패한 뒤 “사태를 지켜보겠다”는 의미심장한 문구를 남기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MBK가 움직인 이유에 관한 추측 외에도 이번 일이 국내 자본시장에 미친 영향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간다. 이중에서도 MBK가 이번 일로 한국 대기업으로부터 ‘독립 선언’을 했다는 눈에 띄는 새로운 분석이 있다. IB 업계의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MBK의 행동은 우리는 이제 한국 대기업의 돈이 필요 없다는 선언을 한 것과 다름 없다”며 “우리는 이제 대기업들과 동급이라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이제 MBK는 한국 대기업들의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MBK는 자금 조달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한다.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에 나선 MBK의 스페셜시츄에이션 펀드 2호만 해도 조성 자금의 절반 이상이 미국 일리노이주 교직원은퇴연금과 콜로라도주 공무원은퇴연금 같은 해외서 나왔다.

MBK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번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는 국내 대표 PE의 대기업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이 될 것이다.MBK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번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는 국내 대표 PE의 대기업으로부터의 독립선언이 될 것이다.


국내 PE 대부분이 향후 인수합병(M&A) 거래나 투자 기회를 기대하고 대기업과 우호적으로 지내는데 MBK의 덩치가 커진 만큼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다. 이미 MBK는 2017년 정보제공업체 프레킨(Preqin)이 꼽은 글로벌 PE 61위에 올랐다. 최근 10년 간 시장에서 84억 달러를 조달했다. 100위 권 순위 내 한국에 본사를 둔 곳은 MBK가 유일하다. JP모건 에셋매니지먼트 PE그룹(53위·94억 달러)이 가까이 있다.

실제 MBK도 이번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MBK는 “상장폐지나 인수합병과 같은 일반적인 목적보다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국내 자본시장에서 처음으로 공개매수가 시도됐다는 점 또한 자본시장의 외연을 더 넓힌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MBK가 이번 공개매수 시도를 자본시장 발전 측면에서도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국내 PE 업계를 이끄는 업체로서의 자신감도 묻어난다. 최소한 MBK가 지배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국내 대기업을 M&A 하려고 한 시도는 자본시장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이며 PE와 대기업과의 관계가 새로 설정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국 대기업들이 긴장할 요인도 생겼다. 반대로 앞으로 대기업들은 대기업끼리 똘똘 뭉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영필의 SIGNAL’은 서울경제신문의 자본시장 전문 매체 시그널(SIGNAL)을 통해 제공됩니다. 투자은행(IB) 업계의 이슈와 뒷이야기, 금융시장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을 다룹니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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