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등 가상자산사업자(VASP)의 실명계좌 발급이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조건을 신설하고 VASP의 원화마켓 진입을 위한 사업자 변경신고 수리 강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실명계좌 발급은 은행의 재량에 맡겨왔지만 부적절한 사례가 늘자 직접 관련 법규를 개정, 규제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2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위는 특정금융거래정보법(이하 특금법) 시행령·고시를 개정해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 자격 요건을 신설한다. 현재 은행이 실명계좌를 발급하는 데는 별다른 제약이 없다. 그러나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당국의 검사 이력과 위험관리수준 평가 ‘보통’ 이상을 받은 은행만 실명계좌를 발급할 수 있다. 위험관리수준 평가는 비공개다. 이미 실명계좌를 발급했으면 2년이 지나야 다른 VASP에 계좌를 내줄 수 있다. 또 은행은 VASP의 법령 준수 여부와 영업 지속 가능성을 필수로 확인하고 위험 평가 사항을 상세히 마련해야 한다.
사업자 변경신고 수리의 장벽도 높아진다. 원화 마켓에 진입하려는 VASP는 향후 은행의 평가 서류를 신고서에 함께 첨부해야 한다. 또 은행이 실명계좌를 부적절하게 발급했을 때 금융당국이 변경신고를 불수리할 근거도 마련한다. 금융위가 VASP 신고 불수리 사유를 시행령에 위임하는 특금법 개정안을 국회와 추진 중인 이유다. 나아가 은행은 위험 평가 방법·절차 등 현재 불명확한 실명계좌 관련 업무 지침도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
현재 VASP가 원화 거래를 하려면 은행과 실명계좌 발급 계약을 맺고 FIU에서 사업자 변경신고 수리를 받아야 한다. VASP 입장에선 원화 마켓에 진입해야 제대로 된 수익을 낼 수 있어 실명계좌가 없는 코인마켓 거래소는 실명계좌 발급·변경신고에 열을 올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최근 역량이 미흡한 VASP가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사례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FIU 측은 자료에서 “부적정한 (실명계좌) 발급 사례를 발견했다"며 “인터넷·지방은행 중심으로 자금세탁방지(AML) 역량이 미흡한 거래소의 실명계좌 발급 추진 사례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가상자산 거래소 한빗코는 광주은행과 제휴를 맺고 FIU에 변경신고를 신청했으나 지난해 11월 불수리됐다. 지난해 10월 한빗코가 고객확인의무(KYC) 위반으로 FIU에서 과태료 약 20억 원을 부과 받은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지난 2022년에는 가상자산 거래소 프로비트가 토스뱅크와 실명계좌 발급을 논의했으나 금융당국이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FIU 관계자는 “지난해 9월부터 TF를 꾸리고 VASP 신고제도 개선과 관련해 시행령·고시 개정을 검토 중”이라며 “은행의 실명계좌 발급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