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5년 나폴레옹 체제의 몰락과 함께 프랑스 사회는 왕정복고 시기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 미술의 영역에서는 정형화된 신고전주의 양식과 대비되는 낭만주의미술이 태동했다. 나폴레옹 제정의 붕괴와 부르봉왕조의 복귀가 이뤄지던 격동의 시대상을 낭만주의 화풍으로 가장 잘 표현한 작가는 테오도르 제리코다. 그의 주요 작품들은 작가 자신이 살았던 동시대적 사건에 영감을 받아 제작됐으며 급변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개인이 느끼는 불안·두려움·상실감 등의 감정들이 격정적으로 표출돼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특히 1819년 살롱전에 출품된 ‘메두사호의 뗏목(Le Radeau de la Méduse)’은 실제 발생한 재난의 비극적 상황을 형상화한 작품이자 프랑스 낭만주의미술의 시작을 여는 주요한 회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제리코는 이 작품에서 동시대성,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 그리고 감정의 직접적인 표현이라는 새로운 회화적 가치를 구현하고자 했다. ‘메두사호의 뗏목’은 난파 사건의 재현을 통해 단순히 재앙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춘 ‘해상 재난화’의 성격을 뛰어넘어 사건이 발생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작가 자신의 주관적 성찰을 담고 있다. 영웅주의, 이념, 도덕적 가치가 의미를 상실한 시대를 살았던 제리코는 이 작품에서 극한의 상황에서 직면하게 되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과 잔인함,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을 스스로 보위해야 하는 참혹한 현실을 시각화하려 했다. 결국 혼돈의 시대를 살았던 제리코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회화의 주제는 인간의 내면과 본성에 대한 탐구였다. ‘메두사호의 뗏목’에는 현실의 경험에서 비롯된 작가의 주관적 감정과 역사 인식이 신고전주의자들이 창출하고자 했던 허구의 이상화된 세계를 대체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새로운 역사화 양식과 낭만주의미술의 전형을 창출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