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45세, 대기업 퇴사 후 '동네서점 책방지기' 되다

지역 동네서점 다니던 취미… 2018년 퇴사 후 창업

세무, 강의, 모임, 책 납품…서점 운영 A부터 Z 경험

하고픈 일 하려면 '시뮬레이션'·'배우는 자세' 중요


손님맞이 채비로 분주한 서점의 문이 ‘쨍그랑’하고 열렸다. “문 열었네. 이거 먹어봐.”

이웃 아주머니가 떡을 한 아름 안고 와 건네주고는 감사 인사 받을 새도 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 냄새나는 동네 서점 ‘책인감’의 하루다.




이철재 책인감 대표가 서점 오픈에 앞서 책을 정리하고 있다. / 정예지 기자이철재 책인감 대표가 서점 오픈에 앞서 책을 정리하고 있다. / 정예지 기자



책인감…‘책과 사람, 감성이 있는 곳’


서울 노원구 경춘선 숲길에 자리한 ‘책인감’, 이곳의 주인은 50세의 이철재씨다. 2018년 1월, 그는 회사를 떠났다.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같은 달, 카페 겸 서점을 인수해 그의 취향대로 꾸며 나가기 시작했다. 25평 작은 공간을 1200여 권의 책으로 채웠다.

책방과의 인연은 2010년대 초로 거슬러 간다. 그는 18년 동안 타이어 회사에서 유통과 영업관리를 맡았다. 반복되는 일과 속 그는 성장 돌파구를 찾기 위해 독서를 택했다. 시간을 쪼개 1년에 50~100권의 책을 읽었다.

그는 서점 방문도 좋아했다. 2014년 한 방송을 통해 ‘독립서점’을 알게 됐다. 그 후 국내 여행을 가면 꼭 그 지역의 독립서점에 들렀다. 그가 방문한 곳만 60여 개에 달한다.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동네서점 ‘책인감’의 내부. / 정예지 기자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동네서점 ‘책인감’의 내부. / 정예지 기자


2017년 말, 어차피 사무직은 50세를 넘겨 근무하기는 힘들다고 판단했다. 직위가 오르며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종종 있었다. 지금이라도 내 길을 찾자 결심했다. 3개월간의 준비 끝에 ‘책인감’을 차렸다. 이름에는 좋은 ‘책’을 소개하고, 다양한 강연과 모임을 열어 ‘사람(人)’을 모으고, 책 읽기 좋은 ‘감성’ 서점으로 만들겠다는 꿈을 담았다.


“서점이라고 책만 팔아선 안 돼…지속가능성 고민”




이달 독립서점 정보 사이트 ‘동네서점’에 따르면 국내 독립서점은 모두 898개다. 독립서점은 주인의 취향을 담은 작은 서점을 말하는데, 손님의 고민을 듣고 주인장이 책을 처방해 주는 ‘책 처방 독립서점’, 숙박 시설과 연계된 ‘북 스테이 서점’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한가지 공통된 것은 ‘책만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방지기들이 책만 팔고 싶다고 말해요. 책만 팔아서는 살아남기가 어렵다는 말이죠.”

그도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했다. 그는 자칭 책인감을 ‘전국에서 지원사업을 가장 많이 받은 서점’이라고 말한다. 18년 동안 회사에서 문서로 커뮤니케이션 해온 만큼 지원서와 보고서를 쓰는 것이 그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대표는 그 덕에 심야책방 지원사업,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동네책방 문화사랑방 등 각종 지원사업을 통해 작가나 유명인사를 초빙하고, 시 낭송과 글쓰기 등 다양한 강의를 연다.

직장인 시절, 그는 무엇이든 기록하고 정리해 남겼다. 이제 1인 사업자가 됐지만 지금도 그 습관은 이어져 어떤 일이든지 매뉴얼을 만드는데, 그 습관으로 출판과 강의의 기회도 열었다. 그는 동네서점 운영법을 강의하고, 강의를 모아 ‘동네책방 운영의 모든 것’과 ‘책방운영을 중심으로’를 출판했다. 이후 대외 기관과 연결돼 ‘서점세무 및 회계 실무’, ‘서점 경영 세무와 도서 납품’, ‘책방 창업에서 고려해야 할 점’ 등 외부 강연도 뛰었다. 이처럼 파생사업을 만드는 건 콘텐츠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이자 독서량이 감소하는 시대에 서점이 살아남을 방법이다. 그는 올해 도서관 책 납품에도 도전할 예정이다.

‘동네’서점인 만큼 공동체 역할도 빠뜨릴 수 없다. 지역을 활성화하고, 활동 기반을 만드는 일은 그의 사업과도 맞닿아 있다. 그도 동네 신문에 4년째 글을 기고하고 지역 내 조합에도 가입했다.

현실적 시뮬레이션과 배우는 자세 필요


직장 다닐 때와 책방지기가 된 지금을 비교해 달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회사 다닐 때는 돈 말고 마음에 드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근데 지금은요, 돈 빼고는 다 좋아요.”라고 말한다. 먹고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생업을 감내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퇴직 후에는 이 대표처럼 진정 원하는 일을 꿈꾸는 중장년이 많다.

그런 중장년에게 이 대표는 현실적인 시뮬레이션과 배우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사람들이 ‘조금만 벌어도 돼요. 이제는 하고 싶은 일 할래요.’라고 말해요. 하지만 막상 보험이나 연금도 나가야 하고, 월세, 전기세 등 생각보다 많은 금액이 필요해요. 대부분 막연하게 꿈꾸는데 실제로 어떤 일을 어떤 과정으로 하는지 시뮬레이션 해봐야죠. 서점을 운영한다면 한 달에 책 몇 권을 팔고, 몇 잔의 커피를 팔아야 하는 지를요.”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나이나 일의 성격과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도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커피도 더 나은 맛을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하고, 디저트도 계절과 지역에 맞춰 꾸준히 개발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현대 사회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저는 75세까지는 일하고 싶어요. 그래서 아직도 뭘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정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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