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백상논단]퍼스트 무버를 향한 과학기술의 미래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이사장

전략기술에 국가 '흥망성쇠' 달려

선도형 R&D 체계로 대전환 절실

기술혁신 이끌 핵심인재 확보하고

현장 연구자의 요구 적극 반영돼야





세상에는 어떤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법칙들이 있다. 과학기술 분야에도 수많은 법칙들이 존재하는데 반도체 산업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무어의 법칙’을 들어봤을 것이다. 이는 1965년 고든 무어가 자신의 경험적 모델을 근간으로 설정한 예측으로서 ‘마이크로칩에 저장 가능한 데이터의 양이 2년마다 두 배씩 증가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2년마다 반도체의 성능이 두 배 이상으로 향상된다는 것이다. 이 법칙은 2023년 인텔 최고경영자(CEO)인 펫 겔싱어에 의해 ‘3년마다 2배의 집적도 증가’를 나타내는 ‘무어의 법칙 2.0’으로 진화하였다. 이처럼 ‘무어의 법칙’은 지난 60년 동안 지구촌을 디지털 세상으로 바꿔버린 반도체 혁신의 역사를 상징하는 문구로 인식돼 왔다.



‘21세기 전략물자’로 일컬어지는 반도체는 한계 돌파 기술의 서사를 갖고 있다. 반도체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 벨연구소에 근무하던 윌리엄 쇼클리가 1945년 반도체 현상을 최초로 이론화하면서 “고체 상태 밸브”로 명명한 후 진공관을 대체한 트랜지스터로, 그리고 더 작고 더 저렴하며 더 신뢰도 높은 트랜지스터로 진화하면서 반도체의 혁신 신화는 지속됐다. 특히 실리콘 칩 위에 층층이 쌓는 집적회로의 개발, 트랜지스터가 미세화되는 과정에서 전류·전력의 제어를 위한 수많은 기술적 난관 해결, 초미세회로 제작 기술 등에서 끝없는 기술 혁신이 이어졌고 현재는 한 개의 칩에 수십억 개의 트랜지스터가 탑재된 반도체로 진화했다. 크리스 밀러는 그의 저서인 ‘칩 워’에서 “반도체를 수백만 개 이상 생산해낼 수 있는 기술을 고안해낸 기업들,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해 불굴의 의지로 밀어붙인 관리자들, 반도체의 새로운 사용 방법을 상상해낸 창조적인 기업가들 덕분에 반도체는 사회의 모든 영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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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처음으로 반도체 개발을 시작할 때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부분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우리는 각고의 노력으로 1986년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참여 기업들이 4Mb D램과 16Mb D램 개발에 성공했고 1992년에는 삼성전자에서 세계 최초로 64Mb D램 상용화에 성공했다. 그리고 이러한 원천 기술은 오늘날 메모리반도체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의 초격차 기술을 보유한 근간이 됐다. 우리가 비록 서구 선진국에 비해 과학기술 역사는 짧지만 이미 20~30년 전에 반도체·정보기술(IT)·디스플레이 등은 퍼스트 무버의 길을 갔고 여기서 일궈낸 핵심 기술 기반의 전자 산업은 현재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이 돼 우리 경제를 든든히 지켜주고 있다.

2024년의 새해가 밝았다. 현재 대한민국은 대통령과 정부 주도로 퍼스트 무버 연구개발(R&D) 체계로의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과거에는 석유가 국가 패권이었다면 지금은 반도체와 같은 전략기술이 국가의 패권인 기술 패권 경쟁 시대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도 작고 부존자원도 거의 없는 흙수저 국가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국가다. 이에 우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대한민국의 미래 경쟁력을 담보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기술 무기와 함께 이를 키워내고 지켜낼 핵심 인재를 확보해야 미래 생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선도형 R&D 체계로의 대전환이 예전처럼 구호로만 그쳐서는 안 된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변화와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퍼스트 무버로 갈 수 있는 확실한 토양이 될 자율·책임·도전 중심의 합리적인 R&D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모든 대전환의 과정에서 현장 연구자의 목소리가 담기고 이들이 자존감과 자긍심을 회복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환경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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