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분기 이후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이 되살아났으나 연간 성장률이 1.4%에 그친 것은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내수 침체가 예상보다 심각했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이 시작된 2022년부터 신규 착공이 중단된 것이 건설기성 부진으로 나타나면서 건설투자가 전기 대비 4.2%나 줄었다. 2012년 1분기(-4.3%) 이후 약 12년 만에 최대 감소 폭이다.
민간 소비는 0.2% 증가했지만 국내 재화 소비는 줄고 해외여행 증가에 따른 국외 소비 지출이 주로 늘었다. 결국 순수출이 성장률을 0.8%포인트 끌어올렸으나 내수가 0.2%포인트 감소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4분기 성장률은 간신히 0.6%를 기록했다.
내수 침체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올해도 전망이 밝지 않다. 한은(2.1%)과 정부(2.2%)는 잠재성장률(2.0%)을 웃도는 성장세를 기대하고 있으나 신한투자증권(1.7%), LG경제연구원(1.8%) 등 일각에서는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한은도 올해 내수가 경기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나마 기대를 걸고 있는 수출마저 흔들린다. 이달 1~20일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했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일평균 수출액은 2.2% 늘었으나 반도체를 제외한 주요 품목 수출이 부진한 상태다.
정부는 상반기 중 예산을 조기 집행해 내수를 되살린다는 방침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경기 회복을 주도해야 할 기업 체감경기가 점점 꺾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한은이 발표한 올해 1월 전체 산업의 기업경기실사지수(BSI)는 전월보다 1포인트 내린 69로 4개월 만에 하락 전환했다. 지난해 2월(69) 이후 약 1년 만에 가장 낮다. 특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로 조달금리가 오르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자 건설업 등 비제조업을 중심으로 체감경기가 얼어붙고 있다.
소비심리는 소폭 개선됐으나 물가 둔화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에서 비롯된 만큼 물가나 금리 전망이 달라지면 언제든 다시 나빠질 수 있다. 실제로 올해 들어 카드 사용액 증가세는 둔화됐다. 무엇보다 소비나 투자가 반등하려면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려야 하는데 3%가 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가계부채 등으로 인하 시기를 앞당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부의 재정지출과 감세 등이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도 우려할 필요가 있다. 믿을 것은 수출뿐인데 대부분 기관은 올해 미국·중국 등 주요국 성장세가 지난해보다 둔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수출 반등에도 내수 부진이 계속되면서 올해마저 성장률이 2%를 넘지 못할 경우 한국 경제는 ‘L자형 장기 저성장’ 국면에 본격적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출 개선이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해 올해도 성장세 확대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정부가 상반기 조기 예산집행을 예고하고 있고 수출 개선도 상반기에 집중되면서 ‘상저하고’가 예상되며 연간 성장률은 1.7%로 정부와 한은 목표치를 밑돌 것”이라고 했다.
장기 저성장에서 벗어나려면 잠재성장률 수준 자체를 높이기 위한 생산성 향상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신승철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잠재성장률이 향후 1%대, 0%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며 “잠재성장률 올리려면 경제주체들이 인구구조 변화, 저출생·고령화, 생산성 하락, 중국·인도 등과의 경쟁, 세계적인 공급망 재편, 기후변화 등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