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기고]주식회사 다수결 원칙 허무는 상법 개정안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상법은 이사가 회사에 대해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은 미국 법을 모델로 해 도입한 것이다. 이사가 이 의무를 위반하면 회사에 손해배상 책임을 진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박주민 의원과 이용우 의원은 이사가 충실 의무를 부담하는 대상에 기존의 ‘회사’ 이외에 ‘총주주’나 ‘주주의 비례적 이익’ 등을 추가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은 현혹적인 단어로 구성돼 있어 언뜻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사가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충실 의무를 부담한다는 것은 법리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 최근 법무부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이사는 회사를 위해 업무를 수행하는 대리인이다. 회사는 성실히 업무를 수행한 이사에게 회사 명의로 회사 통장에서 보수를 지급한다. 만약 이사가 직접적으로 주주를 위해 의무를 다해야 한다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주주의 대리인이 돼야 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통장에서 이사에게 보수를 지급하려는 주주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에 대해 주주가 회사의 소유자이므로 회사 통장에서 돈을 꺼내 이사의 보수를 지급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법은 명문으로 주주가 회사의 소유자라고 정한 바가 없다. 주주는 회사의 설립과 운영을 위해 종잣돈을 출연한 것밖에 없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주식회사의 주주는 주식의 소유자로서 회사의 경영에 이해관계는 갖고 있지만 회사의 재산 관계에 대해서는 구체적 또는 법률상 이해관계를 갖지 못한다(2015다66397). 주식회사는 주주와 독립된 별개의 권리주체인 것이다(2022다276703). 따라서 이사로 하여금 회사 재산에 대해 법률상 이해관계가 없는 주주에게까지 충실 의무를 부담하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강요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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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 생소한 개념은 아니다. 상법은 주주가 소유한 주식 수에 비례해 회사가 배당액을 산정하고 신주를 배정할 것을 정하고 있다. 소수주주 보호를 위해 다양한 소수주주권을 마련했다. 주식회사가 민주주의라는 근대 정치 체제에서 영향을 받다 보니 주주들의 의사 결정에는 주식의 보유량을 기준으로 하는 다수결이 적용된다. 특히 회사 경영과 관련해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 다수결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국회에 발의된 상법 개정안은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뜻이 다를 경우에라도 이사는 대주주와 소수주주 각각의 뜻을 충실하게 받아들여 행동하라는 것으로 읽힌다. 만약 이사가 대주주의 의사대로 업무를 집행할 경우 소수주주에게 책임 추궁을 받을 것이다. 반대로 소수주주가 원하는 바에 따라 업무를 집행하면 대주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이사는 의무불이행으로 인해 매일 동네북처럼 소송에 시달릴 것이고 배임죄 혐의로 법원에 들락날락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다수결의 원칙이 무력화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같은 상황에서 회사가 유능한 이사를 유치하려면 어마어마한 규모의 임원 배상 책임 보험을 들어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회사가 지불하는 보험료는 궁극적으로 제품 가격에 전가돼 우리 상품의 국제적 경쟁력을 떨어뜨릴 것이다. 우리의 기업 현실이 외국과 다르다는 명분을 들어 국제적으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위험한 발상을 해서는 안된다. 아무리 절대적인 다수 의석을 가진 거대 야당이라고 하더라도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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