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정치일반

"태어난 순간부터 외면, 관심에 행복하다"…한센인 회장이 尹 부부에 편지 쓴 이유는

천형의 땅 소록도 한센인 강제 격리 수용 아픔의 땅

한센병 의학 기술 발달 쉽게 치유 단순 피부병 일종

2009년 소록대교 신설 여전히 대중들에 소외되고 외면

설 선물 논란에는 "오해 풀고 행복한 설날 맞이했으면"

윤석열 부부 내외 이름으로 각계 각층 인사에 전달된 설 선물 상자에 들어간 한센인들의 예술작품 모습. 사진제공=대통령실윤석열 부부 내외 이름으로 각계 각층 인사에 전달된 설 선물 상자에 들어간 한센인들의 예술작품 모습. 사진제공=대통령실




전남 고흥읍내에서 16km 떨어진 작은 섬은 하늘에서 바라본 모양이 작은 사슴을 닮았디해서 ‘소록도’(小鹿島)라고 불렸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여의도 1.5배 정도의 작은 섬은 하늘의 벌을 받은, ‘천형(天刑)의 땅’이라고도 불렸다. 한센인의 강제 격리 수용이라는 국가 폭력의 아픔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934년 일본 총독부는 소록도에 위치한 자혜의원을 소록도갱생원으로 개편했다. 이후 소록도에 한센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한센인들의 집단 수용소를 만든 셈이었다. 한센인은 나환자를 달리 부르는 말이다. 나병균을 발견한 노르웨이 의학자 한센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한센인에게 소록도는 들어가면 나오기 힘든 끔찍한 곳이었다. 한센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고 격리 대상인 죄인 같은 삶을 살았다. 6000여명의 한센인은 강제 노동과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고 한다. 손발이 절단돼도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도 없었고 강제낙태와 단종수술도 자행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소록도 한센인들은 발병과 함께 가족과 생이별, 해부, 화장이라는 ‘3번의 죽음’을 당했다고 말한다.

소설가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소록도를 통해 지배와 피지배의 구조를 형상화하기도 했다. 소록도는 사회 발전 담론 속에 자유에 대한 철저한 억압의 공간으로 설명됐다. 고흥반도 끝자락 녹동항과 채 1km가 못 되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100년 가까이 한센인들을 강제로 격리 수용한 딴 세상이었다.

한센병은 이제 의학 기술 발달로 쉽게 치유가 가능한 단순한 피부병의 일종으로 남았다. 2009년에는 섬과 육지를 잇는 소록대교가 생겼고, 가끔 섬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치유의 섬, 낭만의 섬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소록도와 한센인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큰 관심사가 아니다. 43년간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돌봤던 마리안느 스퇴거 간호사와 지난 9월 선종한 마가렛 피사렉 간호사가의 선행 정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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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센인 단체 대표가 2일 윤석열 대통령 부부의 설 선물에 “태어난 순간부터 외면당했던 우리 인생에 관심을 가져줘 그저 행복하다”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소외되고 외면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을 갖게했다”고 밝힌 것도 이런 배경이다.

김인권 회장은 대통령실의 설 선물상자에 한센인들의 그림이 들어간 것에 대한 감사 편지를 보냈다. 윤 대통령 내외를 수신으로 한 ‘대통령 설 선물 그림 관련 한센인들의 바람과 마음’이란 제목의 편지였다. 김 회장은 서울대병원 레지던트 시기였던 1977년 소록도에서 한센인들을 돌본 것을 계기로 40년 넘게 한센인들 곁을 지켰다.

김 회장은 “대통령실의 설 선물에 한센인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며 “우리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퍼져나가 많은 관심을 받는다는 것에 희망을 갖게 한다”고 적었다.

특히 김 회장은 최근 불교계를 중심으로 선물 상자에 타 종교의 표식 등이 담긴 것에 대해서도 “오해가 풀렸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그림 속 십자가로 인해 상처받는 분들이 생긴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든다”며 “소록도에만 살다 보니 소록도 근처 문화재를 그림에 담은 것뿐인데 다른 분들에게는 또 하나의 편견으로 보였다니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소록도 내 감금실 모습. 1935년에 지어진 단층 건축물로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로 일제강점기 때 소록도갱생원에 수용된 한센병환자 중 원내 내규를 위반한 자를 격리·감금했다./사진제공=국립소록도병원 홈페이지소록도 내 감금실 모습. 1935년에 지어진 단층 건축물로 형무소와 유사한 구조로 일제강점기 때 소록도갱생원에 수용된 한센병환자 중 원내 내규를 위반한 자를 격리·감금했다./사진제공=국립소록도병원 홈페이지


이어 “그림 속의 십자가는 외로움을 채우고 버틸 수 있게 하는 우리에게는 걷기 위한 지팡이였고, 누군가가 내밀어준 간절한 삶의 손길 같은 것”이라며 “소록도 주민뿐만 아니라 모든 한센인의 간절한 바람은 우리 그림으로 인해 벌어진 모든 분들의 오해가 풀리고 다툼 없는 행복한 설날을 맞이했으면 한다”고 적었다.

한편 대통령실은 이번 설 선물상자에 한센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을 극복하고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국립소록도병원 입원 환자들의 미술작품을 소개했다. 소록도병원 환자 작가들은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은 없지만, 소록도의 풍경과 생활상을 담은 작품 활동을 통해 세상과 소통해왔다. 설 명절 선물에도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하지만 편견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품는 대통령실의 모습이 빛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강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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