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이 5억 원인데 집값만큼 분담금을 내라고 하니 당연히 못 내죠. 기껏해야 여윳돈 한 2억~3억 원 있는 걸로 여기 아파트 하나 사 놓은 건데 그걸 어떻게 부담하겠어요.”(상계동 소재 공인중개사)
최근 서울경제신문이 찾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는 재건축을 환영하는 현수막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지난해 정부가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면서 재건축의 첫 관문인 안전진단 통과에 성공한 단지가 연일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정밀안전진단에서 재건축 판정을 받은 단지들만 상계주공 1·2·3·4·6단지와 상계 한양, 월계삼호 4차, 월계 시영, 하계 현대·우성 등이다.
하지만 정작 이 곳에서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은 다소 수그러들고 있다. 치솟는 공사비와 분담금에 대한 우려로 지난해 상계주공 5단지가 시공사와의 시공 계약을 해지하는 등 분담금에 대한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계동 소재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A씨는 “상계동의 경우 대부분의 소유주 연령층이 굉장히 높은데 이들은 주로 약간의 월세를 받아 생활비 보태려는 이들이라 재건축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며 “이분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분담금에 대한 생각은커녕 ‘강남에서는 저층 아파트를 가진 사람들이 재건축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데 왜 우리는 돈을 내야 하느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재건축 이야기가 나온 지 이미 1년 가량 됐지만 사업성이 나오지 않기 때문인지 매수하려는 사람도 최근에는 많지 않다”며 “재건축에 관심이 있던 일부 소유주들도 최근에는 분담금 이슈 때문에 가격이 더 빠지기 전에 팔려고 하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자가 만난 주민들도 재건축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다. 수십 년째 상계주공 6단지에 거주 중인 한 소유주는 “재건축이 빨리 진행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분담금은 앞으로 정해지는 금액을 봐서 낼 지 말 지 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5단지에 거주 중인 한 소유주도 “지금 노인인데 재건축 같은 것에 관심이 있겠느냐”며 “재건축 관련해 시공사가 취소됐다는 등의 이야기는 들었지만 자세한 내용도 모르고 관련한 주민회의도 가본 적이 없어 그냥 계속 여기에 살 생각”이라고 재건축 관련 물음에 손을 내저었다.
물론 재건축을 추진하는 모든 단지가 분담금 논란에 제동이 걸린 것은 아니다. 압구정의 경우 수억 원의 분담금도 개의치 않으며 오히려 사업에 시동을 걸고 있다. 최근 압구정3구역 재건축조합과 설계를 맡은 희림 컨소시엄은 조합원 대상 평형 선호도 조사 진행 과정에서 추정 분담금을 제시했는데, 현재 30평형대(평균 34.7평) 보유 조합원의 경우 신축 아파트 34평형을 받기 위해 3억 300만 원을, 40평형을 받기 위해 7억 6000만 원을 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압구정 소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압구정에서는 오히려 현재 논의되는 수준의 분담금이 저렴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며 “구축 30평이 신축 40평이 되는데 필요한 분담금이 8억 원도 되지 않는데 여기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공사비가 많이 올랐기 때문에 이 정도 분담금만 받아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상계동의 경우 몇 억 원이라는 분담금이 큰 부담일텐데 50억 원짜리 집에 5억 원을 내라는 것과 5억 원 짜리 집에 5억 원을 내는 건 다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공인중개사도 "압구정에서 3억 원이 돈이겠느냐”며 “이 동네에서 재건축을 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분담금이 아니라 사업이 진도를 못 나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잘라 말했다.
압구정 주민들도 대체로 재건축을 환영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20년 가량 거주했다는 한 소유주는 “분담금으로 인해 부담이 되는 것은 없다”며 “돈보다는 재건축이 어떻게 돼 삶의 질이 얼마나 향상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역시 20년째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거주했다는 다른 소유주는 “이 동네에 오래 산데다 곧 60세가 넘기 때문에 굳이 고생하며 재건축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생각한다”면서도 “대다수의 주민들은 좋은 집에서 살기 위해 수 억원 정도는 낼 수 있다는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재건축 시장이 앞으로 더욱 양극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공사비와 금융비용이 연일 치솟는 상황에서 분담금은 물론 재건축의 사업성에 대한 주민들 간의 갈등도 극심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상계주공 5단지의 경우 전용면적이 37㎡에 불과하기 때문에 분담금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곳처럼 전용면적이 작고 가구 수가 많은 곳들에서는 유사한 분담금 논란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분담금 없이 재건축을 할 수 있는 단지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규제 완화 등과 관계없이 앞으로 재건축 시장은 사업성과 분담금이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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