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끌어다 쓴 다중채무자들이 역대 최다치를 기록했다. 대출을 받아 기존 빚을 갚아나가는 '돌려막기'가 한계에 달해 결국 원리금 상환을 하지 못해 연체하는 비율도 4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12일 한국은행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다중채무자 가계대출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국내 가계대출 다중채무자는 450만 명으로 집계됐다. 다중채무자는 3곳 이상의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차주를 의미하는데 직전 분기(448만 명)보다 2만 명 늘어난 역대 최다 수준이다. 다중채무자가 전체 가계대출자(1983만 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2.7%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다만 전체 대출 규모와 1인당 평균 대출액은 568조 1000억 원과 1억 2625만 명으로 전분기보다 각각 4조 3000억 원, 160만 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다중 채무자의 평균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을 갚지 못한 대출 비중)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5%로 추정됐다. 2019년 3분기(1.5%) 이후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들의 평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58.4%로 전분기(61.5%)보다 3%포인트 가까이 낮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월 소득의 60% 가까이를 대출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는 만큼 사정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DSR이 70%가 넘는 다중채무자들도 전체 다중채무자의 26.2%(118만 명)에 달하고 있다. 각종 공과금과 세금 등이 소득의 30% 가까이 차지하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대출 원리금과 세금 등을 내고 난 이후 소비 여력은 거의 없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한은도 지난해 말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취약 차주, 비은행금융기관의 가계대출 연체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등 취약 부문의 대출 건전성이 저하되고 있다"며 "차주의 DSR이 오르면서 소비 임계 수준을 상회하는 고DSR 차주가 늘어날 경우, 이는 차주의 소비성향 하락으로 이어져 장기에 걸쳐 가계소비를 제약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다중채무자 가운데서 저소득·저신용자가 늘고 있다는 것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신용점수 664점 이하) 상태인 다중채무자를 '취약 차주'로 정의하는데, 지난해 3분기 말 현재 이들은 전체 가계대출자 가운데 6.5%를 차지했다. 직전 분기(6.4%)보다 0.1%포인트 늘어 비중이 2020년 3분기(6.5%) 이후 3년 만에 최대 기록을 세웠다.
3분기 말 현재 취약 차주의 평균 DSR은 63.6%였고, 취약 차주 가운데 35.5%(46만명)의 DSR이 70% 이상이었다. 이들의 대출은 전체 취약 차주 대출액의 65.8%(63조4천억원)를 차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