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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청, 깜깜이 심사로 논란…군사기밀 빼돌려도 면죄부 받은 HD현대重[이현호 기자의 밀리터리!톡]

HD현대중공업 “방사청의 판단 존중”

한화오션 “재심의 및경찰 수사 촉구”

기밀 유출에 임원 개입 여부가 관건

방사청 “객관적 증거 나오면 재심의”

지난해 7월 3일 대전시 서구 월평동 옛 마사회 건물에서 방위사업청의 대전청사 현판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지난해 7월 3일 대전시 서구 월평동 옛 마사회 건물에서 방위사업청의 대전청사 현판식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군사기밀을 빼돌려서 물의를 빚었던 HD현대중공업이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건조 사업에 대한 입찰 배제 위기를 면했다. 방위사업청이 27일 오후 열린 계약심의회에서 KDDX 사업과 관련한 HD현대중공업의 부정당업체 제재 심의를 ‘행정지도’로 의결한 덕분이다.



HD현대중공업의 경쟁사로 특수선 경쟁력을 바탕으로 도약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던 한화오션은 중대한 불법행위에 대한 경미한 징계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지만, 분명한 건 제재 여부에 대한 심의를 주관한 방사청의 깜깜이 방식과 군사기밀을 유출했는데도 HD현대중공업이 사실상 면죄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이 속한 HD현대는 이번 심의회에서 ‘부정당 업체'’ 지정될 경우 사실상 국내 특수선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였지만 입찰 참가 자격을 유지하면서 일단 한숨을 돌리게 됐다. 게다가 KDDX 사업에 대한 HD현대중공업의 입찰을 제한하지 않으면서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라는 국내 특수선 시장의 양강 구도는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다.

앞서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은 KDDX 등과 관련한 군사기밀을 몰래 취득해 회사 내부망을 통해 공유한 것으로 드러나 군사기밀보호법을 위반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최종 유죄 판결을 받았다.

행정지도 처분, HD현대 특수선 퇴출 면해


이번 제재 심의의 핵심은 HD현대중공업은 KDDX 사업 입찰에 참여하면서 군사기밀을 포함한 방위사업 관련 특정 정보를 외부에 제공하지 않겠다는 청렴서약서를 작성한 만큼 기밀 유출이 서약을 위반하는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만약 서약 위반이 인정되면 HD현대중공업은 5년 이내로 입찰 참가 자격이 제한되거나 방산업체 지정이 취소될 수 있다. 따라서 상당 기간 해군 함정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면 국내 특수선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였다.

하지만 방산업계의 예상과 달리 방사청은 입찰 자격을 제한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해 우선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 국가계약법 제27조 1항 1호 및 4호 상의 부정한 행위에 해당하지 않고 제척기간을 지나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방위사업법 59조에 따른 제재는 청렴 서약 위반의 전제가 되는 대표나 임원의 개입이 객관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아 제재 처분할 수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군사기밀 유출이 일반 직원의 개인적 일탈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방산업계는 방사청 공무원에게 향응을 제공한 한화탈레스(현 한화시스템) 직원이 대표 및 임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회사의 입찰 자격을 제한할 수 없다는 2017년 사례와 비슷한 논리를 적용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대전청사. 연합뉴스방위사업청 대전청사. 연합뉴스


행정지도 처분이 결정되면서 일각에서는 방사청의 깜깜이 심사에 대한 불공정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작년 12월에 열린 계약심의회에서도 HD현대중공업의 입찰참가 제한 안건을 심의했지만 부정당 제재 결정을 돌연 보류했다. 최경호 방사청 대변인은 언론브리핑을 통해 “심의했지만 추가로 검토할 사항들이 있어 현재 보완 중”이라며 “그런 사항들이 확인되고 보완되면 심의를 개최할 최종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결정이 미뤄지자 징계 수위를 낮추기 위한 수순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특히 이번 제재 심의 과정도 역대 수준인 약 7시간의 마라톤 회의를 거쳐 진통 끝에 면제부가 나오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또한 방사청은 언론에 심의 과정 및 결론에 대한 전후 설명도 없이 결과만 통보하겠다고 밝혀 언론이 반발하자, 제재 결정에 대한 법률적 근거만 달랑 제시하면 깜깜이 심사라는 논란을 자초했다.

국방부검찰단 “중역 결재했다” 답변 확인


무엇보다 계약심의위는 결정 판단이 된 근거와 자료가 부실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방사청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관련 법원의 판결문만 가지고 현대중공업의 대표 또는 임원이 이 사건에 개입한 사실이 확인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반면에 국방부검찰단의 사건기록에 따르면 유죄 확정 현대중공업 직원 9명 중 1명인 A씨는 군사기밀을 불법취득한 사실을 보고한 보고서에 임원(중역)이 결재한 정황이 담긴 진술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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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단은 A씨에 대해 “군 실무자로부터 군사비밀을 제공받아 열람 후 불법으로 촬영해 탐지·수집했으며 이를 국내출장 복명서를 통해 열람한 사실을 보고했고, 이를 피의자와 부서장 및 중역이 결재한 게 맞느냐는 물음에 예라고 답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방사청은 국방부검찰단과 울산지검 등 수사기관의 사건기록은 구하지 않은 채 이번 결정을 내렸다. 여기에 기밀 유출을 개인의 행동으로 치부해버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으로 진행으로 해당업체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불법행위 낮은 징계 vs 이중처벌 피해”


방산업계는 이번 이번 방사청 결정에 대해 “군사기밀 유출이라는 중대한 불법 행위에 대해 예상보다 낮은 징계다”라는 의견과 “입찰에서 감정 등 징계를 받은 HD현대가 이중 처벌”이라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당장 HD현대중공업은 “국내 함정산업 발전과 수출 증대로 K-방산 성장에 기여하겠다”며 환영의 입장을 밝힌 데 반해 한화오션은 “기밀 탈취는 방산 근간을 흔드는 중대 비위로 재심의와 감사, 경찰 수사를 촉구한다”며 강하게 반발하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HD현대는 지난해 유죄 판결 후 특수선 입찰에서 계속해서 감점을 적용받고 있어 입찰 자격 제한까지 적용받는다면 이중 처벌이 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특수선 입찰에서 HD현대중공업에 1.8점의 보안사고 감점을 적용하고 있는데, 추가적인 사업 입찰참여 제한은 사실상 퇴출에 가까운 조치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화오션은 입찰 과정에서의 감점과 입찰 자격을 제한하는 행정처분은 엄연히 다른 징계라고 강조한다. 보안사고 감점은 발주처인 국가가 계약당사자를 고르기 위해 적용하는 기준이고, 국가기밀과 유출과 같은 중대한 불법행위는 응당 별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HD현대중공업이 3년 간 기본설계를 해온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 제공=HD현대중공업HD현대중공업이 3년 간 기본설계를 해온 한국형 차세대구축함(KDDX) 조감도. 사진 제공=HD현대중공업


이번 방사청의 결정으로 당분간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양강구도는 유지될 전망이다.

우리나라에서 호위함급 이상 함정을 설계·건조할 수 있는 기업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유일하다. HD현대중공업이 국내 특수선 시장에서 배제되면 한화오션의 독점 체제가 구축될 수밖에 없다. 이런 연유로 이번 방사청 결정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조선업계는 HD현대중공업과 환화오션의 경우 잠수함을 제외한 특수선 분야에서 비등한 기술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한다.

HD현대중공업은 1975년 최초의 국산 전투함인 울산함 개발부터 이지스구축함 배치-Ⅰ·Ⅱ를 개발했고, 해군의 중대형 함정 개발사업 23개 중 12개를 독자 개발했다. 수상함 수출도 국내 최다 실적을 보유 중이다.

특수선 양강 구도 붕괴, 방사청 결정 영향


한화오션도 1981년 방산업체 지정 후 최근까지 50여척의 수상함을 건조한 만만치 않은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운용 중인 해군 구축함 사업의 모든 라인업(KDX-I,II,III)에서 건조 실적을 가진 유일한 업체다.

다만 잠수한 분야에선 한화오션이 장보고-Ⅰ·Ⅱ·Ⅲ 잠수함을 모두 수주하는 등 독보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국내 특수선 시장이 HD현대와 한화오션으로 양분된 만큼 큰 관심을 끈 결정”이라며 “HD현대중공업의 입찰이 제한되지 않으면서 양강 구도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정치권을 끌어 들이고, 조선소가 위치한 울산의 울산상공회의소를 동원해 방사청에 선처를 요청하는 건의서를 발송하는 등 총선을 앞두고 여론 몰이로 방사청을 압박하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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