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를 두 달 앞두고 마음이 급해진 정치권이 최근 가상자산 공약을 쏟아냈다. 국내 비트코인(BTC)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허용, 가상자산 과세 기간 유예·한도 상향 등 대부분 투자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이다. 심지어 이전 선거에 등장했던 일부 공약이 재활용되자 업계에선 공약의 현실성,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왔다.(관련기사 ‘가상자산 포퓰리즘, 고사하는 업계’ 1편, 2편, 3편)
정치권이 표심에 한눈을 판 사이 투자자 피해도 속출했다. 투자자들은 최근 연달아 터진 해킹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가상자산 프로젝트 플레이댑은 지난 10일 해커에게 토큰 발행 권한을 탈취당했다. 지난달엔 가상자산 프로젝트 썸씽(SSX)과 크로스체인 서비스 오르빗체인에서 각각 180억, 1090억 원 규모의 자산이 도난됐다. 갤럭시아머니트리의 갤럭시아(GXA)도 지난해 말 약 32억 원에 달하는 자산을 해킹당했다.
결국 SSX와 GXA는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상장 폐지됐다. 해킹 피해의 위험성에 대해 업계도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공약에서 ‘해킹 방지’에 대한 내용은 일절 없었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빠진 정치권이 깊은 고민 없이 공약을 만든다는 점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해킹에 대비해 가상자산사업자(VASP)의 보험 가입, 준비금 적립 의무를 규정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하 가상자산법)이 오는 7월 시행되지만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가상자산법이 규정한 VASP의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VASP는 거래소와 지갑·수탁 사업자 정도다. VASP에 포함되지 않으면 해킹 보험 가입·준비금 적립 의무를 따를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VASP가 가입할 수 있는 해킹 보험 상품도 요원하다. 해킹 보험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고 VASP가 아닌 기업에도 보안 의무를 부여한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업계에 이미 산적한 과제가 많은데 현물 ETF, 과세 유예와 같은 큼지막한 정책이 실현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두루뭉술한 ‘공약 줄세우기’ 이전에 VASP 범위 구체화, 가상자산 보험 마련 등 시장 건전화에 반드시 필요한 퍼즐 조각부터 맞춰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