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유럽연합(EU), 영국산 사과(부사 품종 제외)는 현재 수입관세가 ‘0%’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라 현재 무관세가 됐기 때문이다. 사과의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세율은 45%지만 이미 상당수 국가의 세율이 제로다. 적절한 가격에 수입을 확대하기 위한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춰진 셈이다. 부사의 경우도 미국 관세는 15.7%, EU와 영국의 관세는 17.1%로 기본세율보다 낮다.
문제는 검역이다. 관세가 없어도 검역을 통과하지 못하면 수입이 불가능하다. 국내에 사과 같은 생과일을 들여오려면 국제식물보호협약(IPPC), WTO 동식물위생검역(SPS) 협정 등에 따라 총 8단계의 수입 위험 분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본이 가장 빠른 5단계까지 왔지만 5단계 협의 과정에서 병해충에 대한 위험 관리 방안 마련에 어려움이 있어 2015년께 중단됐다. 독일과 뉴질랜드가 3단계, 미국이 2단계에 머물러 있다. 검역 당국은 “사과 관련 위험 병해충이 유입되면 한국의 대표 수출 농산물인 파프리카·배·딸기 등의 수출이 중단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한국이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위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려면 검역 완화를 포함해 사과 수입 문제를 결국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CPTPP는 SPS의 대폭 완화를 요구한다. 실제 CPTPP는 제한된 기간 내 검역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지역화를 넘어 단위 농장별로 수입이 가능한 개념인 구획화까지 도입한 상태다. 예를 들어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사과 병해충이 발견됐더라도 지역화 개념을 적용하면 같은 국가 내 다른 지역인 워싱턴주 사과는 수입할 수 있다. 구획화는 같은 지역 내에서도 농장이나 생산 시설별로 더 쪼갠다.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가 사과 값 급등에 따른 수입 요구를 뒤로 미루더라도 CPTPP 가입 전후로 검역 문제를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 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은 “경제안보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광물 등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얻기 힘든 상황에서 CPTPP 가입은 기업들이 유연하고 안정적인 공급망 체인을 구축할 수 있게 할 것”이라며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 등에 대해서는 협상에서 노련미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다만 검역 문제와 농산물 시장 개방에 따른 후폭풍이 클 것이라는 걱정도 많다. CPTPP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CPTPP 가입 시 SPS 절차가 단계당 6개월 이내, 1년 이내 등으로 당겨질 수 있지만 CPTPP 협상을 용이하게 할 목적으로 검역의 절차적 정당성을 어긴다면 한국의 협상력을 낮출 뿐 아니라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