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세계 유수 연구자들을 유치해 기업·대학·연구소가 함께하는 이른바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만들면 어떨까요.”
싱가포르 난양공대(NTU)의 호텍화 총장과 람킨용 수석부총장은 최근 서울경제신문 본사에서 진행한 합동 인터뷰에서 “한국이 인구 감소, 지방소멸, 잠재성장률 저하 우려가 큰데 글로컬(글로벌+로컬)대학 등 한국 대학과 기업이 해외 유수 인재와 어우러지는 혁신 생태계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세계 유수 인재를 한국에 유치해 과학기술의 융합을 꾀하고 일자리와 혁신 벤처·스타트업을 키우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킥시티(KICK-City)라고 명명하며 게임의 룰을 바꾸기 위한 퀀텀 점프가 될 것이라고 했다. 킥(KICK)은 ‘Korea Industry Convergence Knowledge’의 약자다. 두 사람은 본사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차세대 반도체와 첨단 바이오 분야의 연구개발(R&D) 현장을 방문할 때도 기자와 동행하며 킥시티에 관한 비전과 전략을 풀어놓았다.
-한국은 올해 국제 R&D 예산(1조 8500억 원)을 지난해보다 3.5배나 늘리며 해외로 나가는 추세다. 난양공대는 역으로 세계 유수 인재를 불러들이고 있다.
△호 총장=난양공대는 세계적 학자뿐 아니라 잠재력이 큰 우수 인재를 끌어들이는 자석과 같다. 예를 들어 난양 석좌조교수 계획에 따라 젊은 유수 연구자가 오면 최대 150만 달러의 초기 연구비를 제공하고 다학제 통합 연구에서 주요 역할을 할 기회를 준다. 싱가포르는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세금이 낮아 금융·바이오 등 다국적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가 많다. 중립 외교를 표방해 전 세계 파트너와 협력할 수 있다. 미래 기술 개발을 위한 인재 창출에 주력하고 있다.
-난양공대는 산학협력을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 비결은.
△람 수석부총장=대학·정부·기업 간 삼각 협력 모델이 잘 갖춰져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세계적인 프로젝트를 많이 한다.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 만약 어떤 기업이 대학에 연구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200억 원을 투자한다면 대학과 정부가 각각 그에 걸맞게 지원한다. 현재 20여 개의 글로벌 기업과 공동 연구센터를 운영하고 있으며 350개의 파트너 기업이 있다. 현대자동차와는 로봇이 부품을 운반해 셀 단위마다 전기차를 생산하는 싱가포르 미래 혁신센터에 적용할 첨단기술을 같이 연구한다. 콘티넨탈은 스마트모빌리티, 롤스로이스는 재료·전기 시스템 연구 등을 같이한다. 수소 분야도 산학연이 뭉쳐 열심히 한다. 이 과정에서 대학, 기업, 싱가포르연구재단(NRF), 경제 기관이 협력해 상업적 성과를 도출한다. 5~10년가량 길게 보고 접근한다. 기업과 특허도 공유한다. 대학이 신산업의 시험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은 아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보다 더 잘돼 있을 것이다. 대학이 첨단 제조업이 발달한 주롱 혁신지구에 있어 학생들은 인턴 경험을 쌓을 기회도 많다.
-난양공대는 인도네시아와 중국에서 혁신 클러스터를 추진하는 것으로 아는데 한국에도 적용할 생각이 있나.
△호 총장=그렇다. 한국은 첨단 제조업과 혁신 R&D 능력을 갖고 있다. 세계 유수 연구자들을 유치해 융합할 수 있으면 큰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난양공대가 그 중개 역할을 하려고 한다. 세계 유수 대학들을 연결하는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 난양공대는 미국 MIT, 독일 뮌헨공대,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임페리얼칼리지 런던, 중국 칭화대 등과 적극 협력하고 있다. 난양공대는 학과별 세계 대학 순위 1위를 따질 때 하버드대(19개)에 이어 칭화대와 공동 2위(각 5개)다.
△람 부총장=한국판 실리콘밸리 프로젝트를 킥시티라고 부르면 어떤가. 한국의 산업 강점을 활용해 해외 우수 인재를 유치해 융합하는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는 킥(KICK)을 ‘Korea Inbound Convergence Knowledg’로 해석할 수도 있다.
-킥시티를 구상한 배경은.
△람 부총장=과학기술 강국이자 한류가 센 한국이 싱가포르처럼 세계 과학기술 인재를 유치하라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인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나라가 됐다. 나도 한국을 참 좋아한다. 한국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대학·기업·연구소와 함께 혁신 실험장을 조성해야 한다. 여기에 해외 유수 연구자를 초청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의 첨단 R&D센터를 유치하고 수많은 해외 과학자가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인구절벽과 지방소멸, 잠재성장률 저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번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을 만난 것도 이런 맥락인가.
△호 총장=맞다. 한국이 세계 R&D의 허브로 탈바꿈하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한국 교육부가 지난해부터 수년에 걸쳐 30개 지방대를 글로컬대로 선정해 5년간 1000억 원씩 총 3조 원을 지원하는 것으로 안다. 글로컬대와 지자체·기업이 협력하고 정부가 지원하면 된다. 물론 서울 일류 대학과 KAIST 등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경기도 시흥시의 경우 바이오·반도체·모빌리티·뿌리산업이 강하고 서울대 시흥캠퍼스 등이 있다. 판교 테크노밸리도 멀지 않다.
-한마디로 한국판 실리콘밸리를 만들자는 제안인가.
△호 총장=실리콘밸리의 꿈을 한국에 만들 수 있다. 그러면 기업과 일자리가 생긴다. 앞으로 1년 내 5년 전략을 짜 본격적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내년이 한국과 싱가포르 수교 50주년이 되는데 킥시티를 하면 양국이 윈윈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호 총장=한국의 산업과 싱가포르의 R&D가 융합해 지식재산( IP)을 만들면 한국에서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상생 비전을 만들고 밀접하게 협력해야 한다. 킥시티에 세계 인재가 모일 것이다. K팝·드라마·영화·뷰티·푸드 다음으로 킥시티를 통해 ‘K-R&D’를 알릴 수 있다.
△람 부총장=지식,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 산업과 대학의 융합이 핵심이다. 인재 유치, 산업의 다양성, 벤처·스타트업 혁신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면 혁신 벤처·스타트업이 많이 나올 수 있겠다.
△호 총장=한국에서 차세대 먹거리를 키워야 한다. 오래된 회사에서도 신산업을 일구고 벤처·스타트업을 활성화해야 한다.
-한국과 싱가포르에 각각 어떤 구체적 이익이 있겠나.
△호 총장=기업의 흥미 있는 문제를 푸는 R&D를 할 기회가 될 것이다. 양국에서 나오는 IP를 활용해 탄소 중립 같은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 난양공대와 같이 일하면 글로컬대의 세계 대학 평가 순위가 높아질 것이다. 협력하면 ‘1+1=2’가 아니라 ‘3’이 되는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다. 난양공대도 세계 톱 기술을 개발하는 기회가 돼 좋다.
△람 부총장=모두에 이익이 될 것이다. 혁신 모범 사례를 만들고 스타트업을 키우는 펀드도 조성해야 한다. 난양공대는 재료 공학, 첨단 제조, 모빌리티 등에서 그러한 경험이 많다.
-난양공대는 중국 광저우와 인도네시아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하는 것으로 안다.
△람 부총장=지난 7년간 광저우에서 난양공대가 중심이 돼 중국·싱가포르 ‘광저우 지식도시’를 구축해왔다. 코로나19 사태로 고충이 있었지만 스타트업에서 많은 IP를 창출했고 공공과 민간을 합친 분야에서도 성과가 났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지난해 ‘인도네시아·싱가포르 지속 가능 혁신 연구(INSPIRASI)’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규모가 굉장히 큰데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 스마트시티 R&D 등을 한다. 현지의 국립인도네시아대 등 4개 대학과 같이 수백 명의 연구진이 참여한다. 한국에서도 킥시티를 하면 미래 세대에 영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호 총장=국제 협력에서 여러 난관이 닥쳤을 때 대처한 경험이 있다.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킥시티를 하면 일자리가 창출되고 대학이 좋아질 것이다. 게임의 룰을 바꾸기 위한 퀀텀 점프 프로젝트다. 한국의 교육부총리도 대학 개혁과 스타트업 생태계를 위한 혁신 프로젝트로 평가했다. 양국이 첨단 R&D 분야에서 협력하면 세계적으로 파급력이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킥시티를 추진하면서 유념해야 할 점은.
△호 총장=정부·대학·기업 등의 도전 목표와 성과를 일치시키는 게 만만치 않다. 단기 성과를 보여주려는 경향이 있다. 말보다는 헌신이 중요하다. 확신을 갖고 밀어붙여야 한다. 경험 있는 인재를 많이 모아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를 보면 여러 나라 인재가 와서 융합한다. 다양성·개방성이 중요하다. 난양공대는 인재의 85%가 해외에서 왔다.
△람 부총장=세계 교수진이나 박사후연구원·박사과정생이 와서 맘껏 연구하게 해야 한다. 윈윈이 되게 만드는 구조가 가장 중요하다.
They are…
◇호텍화 총장: 1961년 싱가포르에서 태어났으며 싱가포르국립대(NUS) 전기공학 학사, 컴퓨터·정보과학 석사를 받았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와튼스쿨) 의사결정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UC버클리 경영대학원과 와튼스쿨 교수를 거쳐 2015년 NUS 교수로 부임해 지난해까지 연구부총장·수석부총장을 지냈다. 싱가포르 정부가 2017년 만든 AI싱가포르(AISG) 초대 원장으로 재직 중이며 싱가포르 공학한림원장도 맡고 있다.
◇람킨용 수석부총장: 1956년 싱가포르에서 태어났으며 영국 임피리얼칼리지런던에서 기계공학과 학사, 미국 MIT에서 기계공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난양공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부임해 현재 수석부총장(산업부총장)으로 대학의 R&D와 산학협력을 책임지고 있다. 대학 내 다양한 산학협력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다. 세계 유수 대학과의 공동 연구 프로그램도 주도한다. 프랑스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