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빅테크를 겨냥한 세계 각국의 ‘디지털 무역 전쟁’이 격화하는 양상이다. 디지털시장법(DMA)을 앞세운 유럽연합(EU)이 노골적인 견제에 나서는 데 더해 미국의 전통적 우방인 캐나다와 일본까지 빅테크 규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화웨이에 이어 틱톡까지 고사 직전인 중국은 반도체·소프트웨어(SW) 전 분야에 걸쳐 거센 반격에 나서고 있다. 미국 빅테크들이 세계시장을 장악하자 각국이 ‘무역 장벽’으로 대응하고 있는 모양새다.
21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하원의 틱톡 금지령으로 미중 인터넷 전쟁이 심화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의회가 틱톡 매각을 강제하는 데 따라 중국 정부도 메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플랫폼 왓츠앱·쓰레드의 중국 내 서비스를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현실을 짚은 것이다.
중국에서는 미국 플랫폼 사용이 공식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가상사설망(VPN)을 이용한 우회로는 매우 활발하다. 시장조사 기관 센서타워는 지난 10년간 중국 애플 앱스토어에서 인스타그램, X(옛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왓츠앱 등이 총 1억 7000만 회 이상 다운로드됐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WSJ는 “중국은 미국이 틱톡 매각 강제 사유로 든 ‘국가 안보’를 이유로 애플에 미국 플랫폼 우회 경로를 차단하도록 요청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반도체·운영체제(OS) 분야에서도 탈(脫)미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국가기관 내 인텔·AMD 중앙처리장치(CPU)와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 OS를 퇴출시킨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미국의 우방국들도 빅테크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캐나다 정부가 빅테크 대상 디지털서비스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로벌 매출 11억 캐나다달러(약 1조 1000억 원)를 넘어서는 디지털 서비스 기업 중 캐나다에서 연 2000만 캐나다달러(약 200억 원) 이상 수익을 올리는 곳에 매출 3%의 세금을 추가하는 법안이다. 구글·메타 등 빅테크 기업들이 적용 대상이다. 이에 미국 의회는 디지털서비스세 입법 시 보복 조치에 나서겠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데이비드 코헨 주캐나다 미국 대사는 앞서 지난해 10월 “(법안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큰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와 의회의 의지가 확고한 상황인 만큼 전통 우방인 미국과 캐나다 간 ‘디지털 무역 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빅테크 저격법’인 DMA를 도입한 EU는 글로벌 빅테크 규제의 선봉에 서 있다. 해당 법의 적용 대상은 틱톡 운영사 바이트댄스 외에 모두 미국 회사로 법 위반 시에는 글로벌 매출 최대 20%의 과징금이 가능하다. EU는 이미 애플·구글(알파벳)·메타에 대한 DMA 공식 조사에 착수했고 MS를 상대로는 오픈AI 투자에 대한 반독점 조사가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했다. 최근에는 일본도 애플과 구글을 겨냥한 ‘스마트폰 경쟁촉진법’ 도입에 나섰다. DMA와 유사하게 외부 앱 장터를 개방해야 하고, 자사 서비스 우대 등을 금지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전망된다. 법 위반 시에는 일본 내 매출 최대 30%의 과징금을 부과할 계획이다. 한국도 공정거래위원회 주도로 ‘플랫폼법’ 도입을 추진 중이다. 다만 내수 플랫폼이 강세인 국내 여건상 한국 기업 발목만 잡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