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는 대신 유예하는 방안이 거론되자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비겁한 결정”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공매도와 관련해서는 전산 시스템 구축과 법 개정 등 절차를 감안하면 재개 시점을 단정할 수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 원장은 25일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개인투자자와 함께하는 열린 토론회’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나 “자본시장 환경이 달라지면서 금투세 도입으로 인한 부정적 영향이 더 커졌다”며 “금투세를 폐지하겠다는 정부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금투세 시행을 공약으로 내건 더불어민주당이 제22대 총선에서 압승하면서 정부·여당의 금투세 폐지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자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다.
이 원장은 “금투세 도입 당시와 현재 자본시장 상황이 크게 달라지면서 해외투자가 늘었을 뿐 아니라 대체투자 자산이 많은 상황에서 배당 등 소득에 대한 지나친 부담은 유동성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며 “금투세의 부정적 영향이 더 클 뿐만 아니라 밸류업과도 전면 상충한다는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가 의견을 바탕으로 정부 내 의견을 다시 조율해 국회에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이 원장은 최근 중재안으로 거론되는 금투세 유예 방안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는 “금투세 유예는 과하게 얘기하면 비겁한 결정”이라며 “지금처럼 밸류업이 현안일 때 자본시장을 활성화하려면 배당 등 자본소득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해야 할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22대 국회도 밸류업을 민생 정책으로 보고 전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패널로 참여한 투자자들도 금투세 시행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유동성 이탈이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날 금감원은 한국거래소·한국예탁결제원·한국증권금융 등과 함께 불법 공매도 방지 전산 시스템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기관투자가들의 자체 전산 시스템을 통해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 차단하고 여기에서 걸러내지 못한 무차입 공매도는 거래소에 구축될 예정인 ‘불법 공매도 중앙 차단 시스템(NSDS)’으로 상시 분석해 자동 탐지하기로 했다. 사전에 실시간으로 적발할 경우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을 뿐 아니라 매매 거래 속도에 영향을 주는 만큼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후 적발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시스템 구축과 함께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단기간 내 마무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올 6월 말로 예정된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 연장 여부도 전산 시스템 구축 등 제도 개선과 맞물려 있다. 공매도 재개 시점과 관련해 이 원장은 “공매도를 전면 금지한 배경과 이유·명분이 충분히 해소됐는지, 전산화 방안이 얼마나 빠르게 마련될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단정해 말할 수는 없다”며 “재개 시점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않고 시장과 투자자 의견을 들을 것을 약속하겠다”고 했다.
이날 투자자들이 요구한 불법 공매도와 관련한 추가적인 대책 마련도 언급됐다. 황선오 금감원 부원장보는 “불법 공매도에 대해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10년 이상 자본시장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하는 등 강력한 제재를 마련하고 있다”며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사후적 적발에 공감하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본인 거취와 관련해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정상화 등 현안 대응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원장은 “금감원이 가장 먼저 시장에 대응하고 집행하는 역할도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빠지면 현안 대응이 흔들릴 수 있다”며 “임기를 마치지 않겠다는 건 아니지만 올해 3~4분기 정도면 후임자가 오더라도 무난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공직으로 갈 생각은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