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가 ‘엔화 약세(엔저)’의 영향으로 물가 전망이 예상 이상으로 오를 경우 금리를 보다 빨리 조정하는 게 적절해진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는 지난달 금융정책결정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최근의 엔저가 (추가 금리 인상의 판단 요소인) 기조적인 물가 상승률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다’고 한 것과 사뭇 결이 다른 것으로 당시 발언 직후 ‘일본은행이 엔저를 용인한다’는 견해가 확산해 엔화 매도가 쏟아지자 이를 수습·견제하기 위한 발언 수정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9일 요미우리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우에다 총재는 전날 요미우리국제경제간담회에서 강연하며 엔화 약세와 관련해 “최근 기업의 임금이나 가격 설정(가격 인상) 등이 적극화하는 가운데 과거과 비교해 환율의 변동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쉬워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물가 전망이나 이를 둘러싼 리스크가 변하면 당연히 금리를 움직이는 이유가 된다”며 “만일 물가 전망이 상승하거나 상승 위험이 커졌을 경우 금리를 보다 빨리 조정해 나가는 것이 적절해진다”고 말했다. 이는 지금의 엔저가 물가를 예상 이상으로 끌어올릴 경우 추가 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일본은행은 물가상승률 2%를 목표로 하면서 이에 따른 물가와 임금의 선순환을 추구한다. 엔저 등에 의한 비용 증가로 물가가 오르는 ‘제1의 힘’이 약화하고, 임금과 물가가 선순환하는 ‘제2의 힘’이 커져 다시 물가가 지속·안정적으로 2% 성장을 유지하는 상황을 그린다. 문제는 급격한 엔저 탓에 그간 약화하고 있다고 판단했던 제1의 힘이 잠잠해지지 않고, 오히려 ‘예상 외로 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NHK는 “우에다 총재는 이 상황을 ‘상승 위험(리스크)’로 보고 경우에 따라 금리 인상 페이스를 빠르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일본은행은 올 3월 마이너스 금리를 해제하고 17년 만에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인상 폭이 미미한 데다 미국의 조기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이 밀리면서 미·일 금리 차가 부각됐고, 달러 매수·엔화 매도를 불러 엔저가 심화했다. 이후 4월 일본은행의 금융정책결정회의를 두고 시장은 금리 동결을 예상하면서도 환율 변동과 관련한 추가 금리 인상에 대한 언급에 주목했지만, 우에다 총재의 기자회견은 이 같은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총재의 “지금의 엔저는 기조적인 물가 상승률에 큰 영향이 없다”, “금융 정책(결정)은 환율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 등의 발언은 시장에서 ‘엔저 용인’으로 받아들여졌고, 회견 중 엔화 시세가 떨어졌다. 미국 경제 지표 발표와 맞물려 지난달 29일에는 엔·달러 환율이 160엔대를 찍으며 34년 만의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일본 정부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두 차례의 대규모(약 8조엔) 엔화 매수세가 유입돼 한때 엔화가 달러당 151엔대까지 올랐으나 최근 다시 155엔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최근 엔저의 근본 원인이 미국 경제의 호황 및 고금리 지속에 있지만, 우에다 총재의 발언도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에 우에다 총재는 5월 들어 환율 관련 발언의 톤을 바꿔가고 있다. 7일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만난 뒤 기자단에게 “엔저에 대해 일본은행의 정책 운영상 충분히 주시해가는 것을 (총리와) 확인했다”며 “기조적인 물가 상승률에 (환율이) 어떤 영향을 주는지 주의 깊게 살피겠다”고 강조했다. 8일 국회 중의원 재무금융위원회에서 “과거와 비교해 환율 변동이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쉬워지고 있다”는 견해를 밝히며 “엔화 약세 움직임을 충분히 주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환율 변동으로 경우에 따라 기조적인 물가 상승률이 움직이게 된다”며 “(이런 상황이 되면) 금융 정책상의 대응이 필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무라 종합 연구소의 기우치 다카히데 이코노미스트는 “4월 기자회견에서 우에다 총재가 (일본은행의) 엔저 용인으로 읽혀질 수 있는 설명으로 일관했다는 것을 문제로 받아들여 일본은행이 (발언을) 수정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